김진 - NO(t) PINK

no(t) PINK
김진 (Kim Jin)
2018.4.26-5.13

정물 – 죽은 자연 (Nature-morte)

모든 것이 상품이 되는 거대한 시장같은 이 세계에서 상품이라는 특정한 조건이 사물에 어떤 변화를 불러오는지, 정물을 소재 삼아 풀어내고 있다.

(L)정물-죽은 자연#12_162x130cm_oil on canvas_2015
(C)정물-죽은 자연#11_162x130cm_oil on canvas_2015
(R) 정물-죽은 자연#10-1_162x130cm_oil on canvas_2015

no(t) PINK :: KIM JIN solo exhibition @Indie art-hall GONG

핑크빛 정물의 과장된 핑크 흉내

이인복

김진 작업의 요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다시 한 번 더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데 있다. 작품의 형식이 여러가지 내용들을 설명해주지만, 그 설명들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점, 즉 핑크색을 앞에 두고 ‘핑크는 없다’라는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한 번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작가의 작업을 세부까지 해석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용은 항상 일반적인 것들의 정중앙 있으며, 아무리 정확히 해석을 하려 시도한데도 전체적인 이미지를 표현해놓는 것에 불가하다. 다시 말해 완벽한 하나의 순간이 맞아떨어지게 옮겨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김진 작업을 해석을 위한 확실한 방법은 은밀한 작가의 내용을 찾기보다는 선입관없는 정신으로 작품 속으로 파고 들어가며 작업에 접근하는 것이 적절하다.

김진의 정물은 분명 부자연스럽다. 심할 정도로 단순화 한다면 말 그대로 ‘핑크밖에 없다’. 그럼에도 ‘핑크는 없다’라는 역설적 전시명을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김진의 정물이 전환과 대체의 결과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전환하고 대체한 것인가. 기존의 인상파 화가들은 산업화의 시대 풍경을 공장, 기관차, 역과 같은 배경으로 녹여 표현했다. 산업화는 그 시기를 다했고 시대는 자본주의와 소비사회의 폭주시대로 전환된다. 사회의 풍경뿐 아니라 생산되는 사물 역시 삶에 쓰이는 것이 아닌 그저 소비를 위해 소비하는 방향으로 성격이 전환됐다. 동시에 사회가 발산하는 색 역시 동시대의 자본주의와 소비사회에 대한 회의와 근심의 색으로 대체됐다. 사회의 정서적 분위기가 사물에 끈덕지게 들러붙어 있는 모습, 맹목적인 소비 신화가 사물에 내리쬐는 빛의 형태. 작가가 포착한 풍경은 전환된 빛과 색채로 가득 차 있다.

정물-죽은 자연#6-7_200x200cm_oil on canvas_2013

정물화는 사물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허나 김진의 정물작업에서는 이 같은 정물화의 특징을 포착하기 어렵다. 언른 보기에, 그리고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김진의 사물 작업은 그저 핑크다. 지극히 부자연스러우며 사물을 분별하기 위한 구체적인 특징들 역시 부재하다. 그림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붓질과 붓질의 틈새를 통해 사물의 경계를 확인할 뿐. 그렇다면 왜 핑크일까? 동시에 왜 핑크는 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단순히 작가가 재해석한 인공적 표현 방식이 부조리의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동시대 사물이 지난 시대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선행되는 부조리의 원인일 것이다. 이는 지난 시기의 우리가 봐왔던 정물과는 동시대의 정물이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표면에 광택제를 뿌린 풍만한 과일, 탈육체화된 색을 입고 비현실적인 형태의 먹음직한 육류 등 본래의 의미가 제거되고 거짓 색이 입혀진 사물들. 동시대의 소비욕을 자극하는 사물들은 과도하게 자연스러움을 추구함으로써 오히려 본래의 의미가 제거된 인공물로 범주가 축소되었다. 지상낙원에 있을법한 색들과 형태의 인공물은 시각을 자극하며 소비사회의 신기루를 부각하고 본질은 꽁꽁 감춰버린다.

‘핑크는 없다’라는 전시의 제목을 단순한 역설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눈앞에 보여 지는 것이 실체와 다른 시대적 정서가 반영된 색채라는 것, 그렇기에 보이는 것이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지 않는 부조리의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 작가는 이를 위해 숨겨지고 파묻힌 것을 드러내는 방식이 아닌 오히려 그 인공의 사물의 색채를 극도로 부각하는 방식을 택했다. 풍만한 과일과 야채, 탈육체화된 육류가 어떠한 매력적인 변장을 통해 색채를 형성하는가. 작가는 이에 대한 답을 캔버스에 담아 넣고자 한다. 빛들로 이루어진 핑크, 눈 앞에 핑크가 핑크가 아닌 이유는 본래의 사물의 자연적 색채가 아닌, 동시대 사회의 정서적 색채가 투과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점의 변화, 사물의 배치나 크기의 변화, 평면의 구석에 존재하는 작은 어둠으로 전체 화면의 이미지를 맞바꿔 버리는 나름의 유머, 하이라이트를 찍어 광원을 드러내는 방식 등 하나의 주제에 대한 지속적인 실험은 결국 붓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채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결국 소비를 위해 설정된 폭력적인 빛의 작용을 화면 위에 지속적으로 밀어내니 ‘핑크’라는 색채가 드러났을 뿐이다. 관객은 이 같은 과장된 핑크를 통해 동시대 사물의 부조리를 인식하게 된다.
이에 더해 작가의 작품에는 사물을 분별한 구체적 특징들이 부재한다, 물론 여기에는 작가가 스스로 고백한 말처럼 사물의 지시적인 부분을 생략해서 관객으로 하여금 사물의 정체를 알아보는 것에 대한 쾌감을 박탈하고자 하는 작가의 짖궂음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소비되기 위해 ‘본래의 의미가 제거된 사물’들을 극대하기 위해 작가는 빛과 색에 중심축을 둔다. 사물의 매끄럽고 말쑥하며 탐스러운 모습, 소비 가능해지기 위한 사물들의 변장은 폭력적인 방식의 빛의 작용을 통해 극대화된다. 강렬한 빛 아래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는 사물, 표면 위를 밀어내듯 강렬하게 존재하는 빛. ‘후린다’는 작가의 표현처럼 붓을 끝까지 밀어내고 동시에 구상적인 요소들의 기를 완전히 꺾음으로서 사물의 인공적인 광채를 더 강렬하게 만든다.

회화가 빛과 색을 다루는 매체라는 것을 고려해볼 때 작가의 정물 작업은 사물이 가진 색체와 빛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 정서적 차이를 갖는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전근대에서 소비를 근간으로 한 후기 자본주의에 변화 과정 속에서 사회, 환경적 요인에 의해 빛과 색의 차이를 누구보다 먼저 포착하고 이를 회화에 녹여내는 것. 유희적이고 변장한 상태의 빛과 색채의 적나라한 현실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이처럼 핑크로 가득 찬 화면을 ‘핑크는 없다’라고 역설하는 작가의 태도는 정체된 회화의 시기를 풀어갈 실마리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전시장을 나서기 전 다시 한 번 김진의 작업 앞에 관객이 서기를, 그리고 질문을 던지길 바란다. 화면 안에 핑크가 존재하는가.

죽은 자연-Nature Morte-Dead Nature #13_162x130cm_Oil on canvas_2015

죽은 자연-Nature Morte-Dead Nature #6-6_oil on canvas_97x130cm_2013

죽은 자연-Nature Morte-Dead Nature #6-7_200x200cm_Oil on canvas_2013

죽은 자연-Nature Morte-Dead Nature #6-5_oil on canvas_72.7x91cm_2013

광택제와 조명으로 발광하는 듯한 과일은 실제보다 더욱 풍만해 보이고, 고기는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는 ‘살(肉)’ 이 되었다. 고통받는 살이 우리의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반짝이는 것들의 매혹과 살의 관능이 대신한다. 나는 그러한 “전환의 결과”와 “대체”를 그려내고자 한다. – 김진

죽은 자연-Nature Morte-Dead Nature #17_oil on canvas_130x97cm_2017

죽은 자연-Nature Morte-Dead Nature #7_162x130cm_Oil on canvas_2015

정물화-nature morte#6-4_2013 oil on canvas 46x53cm

죽은 자연s-Nature Morte-Dead Nature #12_162x130cm_Oil on canvas_2015

정물_죽은 자연-Nature Morte-Dead Nature #11_162x130cm_Oil on canvas_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