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찬석 - THIS is (NOT) a LOVE SONG

THIS is (NOT) a LOVE SONG
서찬석 ( Seo Chan Suk )
2018.1.20 – 2.18

This is not a love song.
붉은사랑, 검은사랑

글 배우리

인생 2라운드쯤을 마감하는 이 시점에 치르게 된 네 번째 개인전에 사랑이라는 주제를 잡아 놓고 머리로 풀어보려고 했지만 역시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는 모른다고 선언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그, 다행히도 이제 사랑을 모르겠다는 것을 알 만큼은 사랑을 안다. 그래서 감히 토끼에게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대신 눈도 없고 내장이 헤집어진 ‘죽은 상태’의 핑크토끼에게 직접 이번 전시를 안내하도록 했다.

the pink_acrylic on paper_145x97cm_2017

사랑을 향하는 사다리
어려운 사랑에 대해 고민하던 그가 그린 모든 것들이 가리키는 것은 “지혜”롭게 탐구되지 않고 홀대받았던 에로스다. 말하자면 그가 처음 그린 에로스는 여전히 지혜와 밀당을 벌이는 범속의 에로스. 아마도 그림을 그린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증오하면서도 그리워하는 것 같다. 사랑에서 조금 떨어져 비웃으면서도 사랑이 조금이라도 가까이 오면 꼼짝 못한다.

포기할 수는 없다. 작가에게 그리고 인간에게 사랑은 필연적인 운명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서는 먼저 열정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향해야 한다. 몸을 탐하면서 형체와 피를 만지던 손을 점점 내장으로 침잠하게 한다. 남, 녀, 가죽, 심장, 털, 혀, 염통, 내장, 물, 눈물, 피가 끈적하고 텁텁한 색들로 엮인 흥건하고 질펀한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중력의 내장 속에서 버무려진다. Do ‘the black kiss’. 서로의 혀가 닿으면 죽음의 불안과 맞물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죽음을 맛보고 나면 그 다음에는 천사들이 이끄는 사랑의 단계로 올라갈 것임을 예감할 수 있다. 갑자기 어울리지 않은 귀여운 천사들이 여기저기에서 발랄하게 웃고 있기 때문. 천사의 날개를 붙잡고 사다리의 꼭대기에 서면 본성이 사랑인 “어떤 놀라운 것을 직관”하게 될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the black kiss_acrylic on paper_80.3x100cm_2017

그는 전시공간의 ‘기’와 ‘승’을 구성하는 그림들 속에 대리석 조각, 투시가 들어간 건축물, 해골, 신비주의자들의 사랑을 받은 피라미드, 사슴, 우로보로스, 해와 달, 거기에 천진한 천사들 하며 연꽃과 잉어들을 어지럽게 널어가며 ‘감춰둔 너의 마음’을 구하려고 한다. 그리고 ‘전’ 쯤에 난데없는 검은 피에타로 정점을 찍는다. 작가는 닳고 닳은 도상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모두 갖다 썼다. 그것들이 전(全)시공간에 살아왔던 사람들의 고민으로 축적되고 다듬어진 도상들이기 때문이다. 그저 거친 필치 속에 세속적인 것과 범속적인 것을 두서없이 섞음으로서 에로스와 필로스(먹물1로 그렸으니)와 아가페(예수님이 계시고)가 서로 다르지 않는 것을 붓으로 증명한다. 얼결에 사다리의 마지막 발판을 밟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이번 전시에서 이 단계는 너무나 불완전하고 물렁하다.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에서 ‘사랑’을 지목한 것도 누군가의 잘 다듬어진 문구를 선택한 것일 뿐이니까. 얼결에. 시작은 애인과 자존심에 관한 것이었지만 일이 커졌다.  
천상의 사랑을 맛보는 마지막 단계에 간 이, 과연 누굴까. 마지막까지 간다고 하더라도 사다리에서 미끄러지는 일은 다반사다. 모두이자 아무도 아닌 것을 사랑하게 되는 그 순간, 그 사다리의 계단 끝을 끝내 올랐다는 것을 아는 순간 다시 미끄러지는 좌절을 겪을 것이 뻔하다. 천사마저도 죽음과 같은 것으로 그려졌으니 말 다 했다. 우리 대부분은 사랑에 가까이 가기는커녕 작가가 ‘적’과 ‘흑’을 오가듯 끊임없이 오르고 내리는 과정을 통해서 상처 주기와 상처 받기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그럭저럭 살만한 건 커다란 무릎으로 우리를 받쳐주는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염통도 있고. 
평화의 사랑꾼 
서찬석 작가는 훈련된 근육이 그림을 그린다는 찬사(?)를 받은 일이 있는데 그건 확실히 젊은 날의 사랑법과 닿아있다. 어제의 근육은 오늘의 지방이다. 하루가 다르게 흐물해진다. 어제의 근육을 믿고 근육의 사랑을 펼쳤다가는 알이 배기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사다리를 올라가는 과정인 그의 그림들은 꽤나 폭력적이지만 작가가 사랑을 몰라서 저질렀던(그렸던) 폭력들에 대한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자신의 근육이 더 이상 단단하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 그림을 그린 이는 폭력의 가해자이자 마음에 상처가 남은 피해자가 된다. 그리고 한없이 연약해진다. ‘내일까지 떠나지 않을 예정’에서 그림으로 남은 여자의 무릎을 끌어안은 남자는 너무나 처연하다. 너를 증오한다고 온 몸에 쓴 젊은이는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가 없다. 하얀 여신 손을 잡고 가는 뿔 달린 빨간 남자는 과연 악마일까. 악마가 과연 저런 소풍 바구니를 들 수 있을까. 알고 보면 너도 나도 우리 모두 영문을 모르고 눈이 뽑히고 내장이 파헤쳐진 분홍토끼다.  

그림들, 너무 심각해 보이지만 심각을 피할 해학의 구멍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필치만이 아니다. 가벼운 아크릴은 작가의 깊은(?) 성찰의 세계를 당연히 잘 알지 못하지만 몸과 피와 죽음과 사랑을 가볍게 하는 재주가 있다. 기름물감으로 그린 피는 더 끈적해져서 사랑인지도 뭔지도 모르는 주제가 괜히 심각해지기만 했을 것이다. 플라스틱 핑크를 검은 구정물 머금은 붓으로 그렸을 때 색다른 깊이가 생기는 건 아이러니지만.
작가가 못 그리는 척 하는 필치로 부끄러워하면서 그린 한 그림이 어쩌면 이 전시가 ‘(범속의) 사랑 노래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유일한(사실 두 점) 그림이자 이 전시의 ‘결’일지 모른다. ‘편 가르지 말고 손잡고 즐겁게 놀자! 다함께’는 근육 반, 지방 반의 팔로 그렸다. “이제 더 이상 근육으로만 사랑하지 않으리!” 하지만 그 그림도 가장된 평화이며, 그가 원하는 건 사다리의 끝이 아닌 그냥 애인일수도 있다는 의심의 끈을 놓지 않겠다. 작가는 아직도 ‘스트롱’을 외치면서 핑크색 붓을 물고 사다리를 수직으로 왔다 갔다 하니까. 그래도 신의 아들을 그리는 걸 보면 어쨌든 그는 무해한 평화주의자다. 그러니까 다소 무섭더라도 염통이 튼튼한 이라면 가까이에서 오래 감상해도 된다. 당신이 봐준다면 아마 전시를 안내해준 핑크의 토끼는 사랑으로 찢어진 배와 빛으로 먼 눈을 꿰맬 실은 얻겠지.


사랑에 관한 혼란스러운 절규를 들은 이상 핑크빛 에로스는 이제 당신 편이다. 그게 범속한 것이든 천상의 것이든 우주적인 것이든. 
this is (not)a love song 드로잉 연작_acrylic on paper_29.4x42cm_2018
1) 지혜에 대한 사랑을 다루는 철학자들을 먹물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그런 먹물로 사랑을 그렸으니, 필로스도 애매하지만 에로스, 아가페와 동급으로 쳐주기로 한다. 여기서 잠시 작가가 오래 써왔던 ‘먹물’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겠다. 작가가 먹물을 붓에 묻히면서 바란 건 단지 고전적인 소묘의 효과를 손쉽게 낸다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들큰한 먹물 향을 마셔가며 만들어낸 거친 붓질과 질질 흐르는 계산된 먹물줄기는 ‘그림’과 ‘완성’에서 자유롭다. 아직은 단정하기 이른 나이지만, 이 작가, 각종 ‘도상’과 먹물을 희롱하는 자태가 예수를 그리는 스님, 차세대 중광은 될 정도로 유망해 보인다.

strong heart / strong brain / strong genitalia_Acrylic on Paper_51x51cm_2018

전시장 전경

돌아 온 악당 

조병희 (인디아트홀 공 책임직원)

2013년 2월 1일 오후6시. 
새벽이면 떠 놓은 물이 얼음이 돼버리는 곳에서 며칠 밤을 새우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130평의 넓이에 한 겨울 내내 몸 한쪽만 겨우 녹일 수 있는 전기스토브가 전부였던 곳. 일단은 ‘공’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곳에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공간을 뜻하는 ‘空’인듯 싶다가, 공장들과 같이 있어서 ‘工’인가도 싶고, 당장 기타 굉음이 흘러 나와도 그럴듯하게 어울릴만한 곳 이기에 ‘公’이라 하나보다 싶은 그런 곳. 그날, 내눈엔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잘 놀고, 잘 마시고, 잘 떠드는 서찬석의 첫번째 개인전 오프닝은 나에겐 락페의 첫공연이 시작되기 전의 설레임으로 기억된다. 

음향 시설조차 없었던 때 인데도 내 귀에는 공연의 시작을 준비하는 베이스와 드럼의 둥둥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했다. 사실, 그 겨울 처음 만난 서찬석. 이은정 작가를 통해 ‘공’에서 개인전을 하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까지만해도 그저 놀기 좋아하는 동생으로만 생각했었기에, 그 며칠동안 ‘공’이라는 결코 좁지 않은 빈 공간을 채워 놓은 크고 작은 작품들의 수만으로도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전시의 막이 올랐을 때 40여년 전에 일터로서 그 공장을 왁자지껄 가득 채웠을 시간이 되돌아온 듯, 수많은 사람들이 되돌아왔다. 

재습은 없다 
서찬석의 첫번째 개인전 ‘악당의 역습’은 오랫동안 먼지만 쌓여 왔던 낡은 공장 건물에 기습적으로 ‘공’이라는 이름과 ‘서찬석’을 새겨 넣고, 앞으로도 종종 괴롭히거나 놀릴 것만 같은 여운을 남긴 채 짧은 일주일은 끝났다. 

그후 5년의 시간 동안 서찬석 작가에게 나라는 사람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일개의 팬이었던 것 같다. 전시가 있으면 조용할 때 슬쩍 들러 보고, 답답한 일이 있으면 가끔은 술친구로 밤을 새우기도 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업계의 동료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지냈다. 야자하던 소년의 서찬석과 공은 어느새 ‘서찬석 작가’와 ‘인디아트홀 공’이라는 이름을 걸고 살아가고 있었고,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듯한 느낌이었다. 이래저래 ‘인디아트홀 공’에 ‘악당의 재습’은 다시는 없을 것이란 확신도 들었다.

새벽1시의 락스타

2018년 1월 19일 새벽1시의 락스타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다. 사랑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그런 이야기. 그래서 This is (NOT) a Love Song이다. 내장이 다 드러나는 몸과 핑크핑크, 공중에는 천사가 날아다니고, 벽에 자리잡은 호랑이는 순간적으로 보는 이를 뒷걸음치게 한다. 지난 5년의 시간은, 서찬석 작가로 하여금 누구나가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들에서 일정한 거리를 확보했을 때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서정’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될 만큼 짧지 않은 시간이었나 보다. 실재하는 사실과 세세한 생활의 도식을 빌려, 보는 이에게 현실생활의 본질을 체험케 한다는 것. 서사를 전제로 한다고는 하지만 ‘그 서사와의 거리두기’가 있지 않으면 이러한 그림은 그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나에게 서찬석 작가의 그림은 너무나 ‘서정적’이기 때문이다.

cctv로 잠시 ‘인디아트홀 공’에서 또 다시 밤을 지새우는 서찬석 작가의 모습을 봤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끊임없이 그리기를 반복한다고해서는 얻을 수 없는 미묘한 지점에서의 능숙한 움직임이 보인다. 그리고, 그 모습은 천부적 재능의 락스타들의 연주 모습에서 봤던 모습들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사를 전제로 하면서 ‘서사와의 거리두기’가 가능한 것이 바로 저 연주 모습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배우고 몸에 익은 기억된 근육의 움직임이 아닌 불현듯이 보였다 사라지는 붓의 움직임이 이 설명하기 어려운 ‘서정’을 가능케 했나보다는 추측이 든다.

지금 내 방에는 서찬석 작가의 2016년 작 “왜 나에게 싸우라고 했습니까”가 벽에 걸려 있다.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처럼 아직도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냥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리고 그 이유 중에 하나를 방금 서찬석 작가의 ‘그리고 있는 모습’에서 본 것 같다.

내일 1월 20일(토) 서찬석 작가의 네번째 개인전이 시작된다. 바라고 있던 악당의 재습은 없었지만, 이번 전시는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볼 수 있는 전시일게다. 그렇다고 눈을 감으라는 말은 아니지만,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인디아트홀 공’을 空으로, 工으로, 公으로, 그리고 서찬석 작가가 좋아하는 축구공처럼 신나게 갖고 노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this is (not) a love song Drawing Series_Mixed media on Wall_29.4x42cm_2018

save my heart (front)_Acrylic, Chinese ink on Wood Wall_가변크기_2018

save my heart (back)_Acrylic, Chinese ink on Wood Wall_가변크기_2018

개기일식 (연작 5EA)_Pencil on Paper_각 29.7x42cm_2018

뜻밖의 바캉스_Acrylic on Paper_80.3x100cm_2017

Time Lap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