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가치 먹자

밥, 가치 먹자
임동현 (Dong Hyun Lim)
2017.8.7 – 2017.8.20

행사1(가치 먹자):
12일(일)과 20일 오후 5시 ‘공에도사가있다(인디아트홀 별관)’.혼밥과 패스트 푸드에 지친 삶을  위해 작가가 1인을 위한 밥상을 차립니다.

행사2(뒷담화 토크): 전시기간 중 목요일과 금요일, 오후 9시~ . 야근에 지친 당신과 작가가 함께하는 맥주와 작품 그리고 시원한 뒷담화가 있는 행사. 행사 1,2 참여방법: comzado@gmail.com로 신청동기를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에게는 개별 연락드립니다.

진지 잡수셨습니까,22.0×30.0cm,Wood cut on Paper, 2017

삶키다.

먹고 살기 위해  삼킨다. 자리에 남기 위해 수치를 삼킨다. 가족의 안락을  위해 날 버리고 모멸을 삼킨다.

순댓국이 먹고 싶다는 그분을 위해 여름날 점심시간을 삼킨다. 그분의 취미활동에 우리의 주말을 삼킨다. 그분의  화풀이에 미소 띤 친절로 우리의  표정을 삼킨다. 툭 던진 업무메시지에 저녁과 새벽과 주말을 기꺼이 삼킨다. 울분과 자존을 그리고 무엇을 삼킨다.

무엇을 먹는 다는 것 삶의 동기이자 유지이며 결과이다. 삶의 고통이 무엇을 입에 넣는 즐거움보다 무엇을 억지로 참게 만든다.

나의 작업은 굴종의 목넘김을 강요하는 관계 속에서 삶을 삼켜야 만하는 모든 이에게 인간의 밥을 차리는 것이다

타일, 60x40cm, Wood cut on Paper, 2017

현실의 밥 (작가 노트)


(오늘의 밥)

사물의 시대. 일상생활에서 사물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즉 일상생활을 소비가 지배하고 있다.

일상 사물들을 소비하는 과정에는 신분상의 격차가 발생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존재하는 사물의 소소함과 일상의 평범함 탓에 사람들은 누구나 ‘보통의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착각한다. 일상의 친숙함과 접근의 용이성이 착각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음식은 생존의 필수조건이라서 비슷한 소비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음식은 사회의 물적 조건과 분배의 지형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신분 격차가 표현되는 영역이다.

다른 사물과 달리 음식은 독특한 의미를 가진다. 음식은 경제활동의 기본중심이며 사회조직의 산물이자 거울이기 때문이다.

음식을 둘러싼 먹기, 요리, 선택의 과정은 개인의 선호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회구조가 반영되어 있다. 음식은 사회적 관계의 프리즘인 셈이다.

누가(어떤 사람,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유희, 친목, 허기충족 등등), 무엇을(음식의 가격과 종류), 어디서(구내식당, 외부식당, 작업장, 야외), 얼마나 자주(고급레스토랑, 편의점, 노점의 이용 빈도), 어떻게(어떤 식기를 사용하여/손 또는 일회용 젓가락·수저에서 여러 종류의 식사도구 사용 등) 먹느냐를 구분해 접근하면 식생활 이면(裏面)의 사회계급이 보인다.

밥의 이면(裏面)은 ‘누구나(보편성)’의 환상은 깨지고 음식취향과 음식관행은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적 신분에 기초한 문화적 성향의 산물임을 삶의 현장에서 확인한다.

모든 밥에는 생존방식이 배어있다. 그래서 나는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있다”는 소설가 김훈의 글에 마음이 울린다.

어느 하청 노동자가 남기고 간 아이스백에 담긴 도시락과 밀린 월세로 자살을 선택한 일용직 노동자의 전기밥솥까지…. 나는 밥벌이가 힘겹고 슬픈, 모든 이들의 힘겨운 밥 한 술을 기록한다. 나는 밥 먹기의 비애와 밥 먹기의 유흥을 의도적으로 비교한다.

한 끼에는 유회와 놀이 또는 고급정보교환과 사교가 있는 밥에서 생존에 치인 침묵의 밥, 허기를 신속히 때우기 위한 이동식 밥까지 한 끼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음을 나의 작업은 말했고, 말하고, 말해야 하고, 말할 것이다.

현실의 밥에 비애가 있는 한 나는 목탄의 거침으로 밥벌이의 힘겨움을, 스크래치로 사람들의 상처와 삶의 흔적을, 캔버스간의 비교로, 삶에 대한 기록을 그려왔고, 그리고, 그려야 하고, 그릴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 시선 받지 못한 곳에서 먹는 끼니를 드러내어 그들의 존재를 담아내는 것이 내 삶의 입증이다.

전시장 360

밥, 가치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