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를 소비하는 사회

인디아트홀 공의 2014 공포 이마고

김상우 (미술평론)

1. 공포를 즐기는 사람이 있을까아니면 쾌감의 대상으로 삼았던 시대가 있을까선뜻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공포는 금기까지는 아닐지 몰라도적어도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고 보는 게 상식이다그렇게 본다면현대사회가 공포를 대하는 방식은 확실히 남다르다공공연히 즐겁게’ 소비하기 때문이다. ‘변태’ 같은 취향이라고 할까. ‘즐겁게라고 썼다고 해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말 그대로 즐거운 경험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그 말을 미학은 미적인이라고 부르며미적인 경험을 설명할 때 사용한다아름답고 추하고 괴기스럽고 등여러 가지 미적인 현상을 일상의 용어로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한다.

2. 공포를 즐기는 가장 대표적인 장르는 공포영화다대부분 미지의 존재가 인간을 학살하는 내용이 주다때문에 죽음의 공포가 영상 전체에 가득하다이는 매우 자연스럽다죽음은 인간의 가장 큰 공포이기 때문이다유한자 인간의 가장 큰 한계인 죽음그것은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더라도 극복하기 힘든 족쇄다. 21세기 첨단과학이 문화를 지배하는 시대에도 종교가 꿋꿋이 살아남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사기든 어쨌든 죽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속삭이기 때문이다공포를 즐기는 취미가 변태라는 것은 공포영화도 확증한다미지의 존재살인과 죽음그리고 젊은 여자공포영화의 문법은 젊은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아서거의 죽을 때까지 그녀를 공격한다. ‘가학적일’ 정도다물론그녀는 실낱같은 희망을 말하는 듯 살아남지만가학성은 영화 끝까지 지속된다변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3. 시대적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모더니즘은 피로한 문명의 산물이다.”(아놀드 하우저신체를 변형했던 게(입체주의모더니즘미술이고인간을 벌레로 격하시켰던 게(카프카바로 모더니즘문학이다기본적으로 추한 것이다하기야 그럴 만도 하다민족 계급 국가 등전세계가 총력적으로 서로의 피를 보려고 미친 듯이 싸웠으니 말이다어쩌면 추하다고 말하는 게 과분할 정도였다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고 하면 고색창연하게 들리겠지만적어도 그때의 예술은 그때의 시대는 그랬다초현실주의가 물체의 형태를 뒤틀었다면제국주의는 시체의 산을 쌓았던 게 달랐을 뿐이다물론이제는 아니다시체의 산은 사라졌다아니현실에서 가상으로 자리를 옮겼다앞서 말한 공포영화가 대신에 시체의 산을 쌓는다. “책 속의 추함이 현실의 추함을 따라 잡는 법은 거의 없다…책은 내 아편이다.”(고종석그리고 우리의 아편이기도 하다책 속의 세계는 가상이며그렇기 때문에 안전한 곳이다관객은 스크린과 안전거리를 확보한 채가상의 죽음이란 아편을 피우는 셈이다청룡열차의 안전벨트처럼 기능하는 셈이다.

4. 안전벨트를 스크린만 하라는 법은 당연히 없다캔버스도 충분히 가능하다. <2014 공포 이마고>가 보여주는 게 바로 그렇다물론캔버스만 쓴 것은 아니며설치 영상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동원했다전시는 공포를 네 가지로 구별했다첫째 시각적 공포둘째 감각적 공포셋째 사회적 공포넷째 초현실적 공포네 덩이는 각각 4부로 사이좋게 찢어진다전시에 유독 (사람이 아니라) ‘인체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럽다누누이 지적한 것처럼공포를 환기하려면 죽음을 표현해야 하고그렇게 하려면 또 다시 사람이 등장해야 하니까. 1관의 작업들이 특히 그렇다제대로 형체를 갖춘 모습은 하나도 없으며머리만 있든지 다리만 있든지 그렇다다들 부품처럼 조각조각 분해되어 있다일찍이 정신분석학과 교감한 초현실주의의 흔적이 역력한 작업들이다해부대 위에서 인체와 우산의 만남을 주선했으니 당연한 노릇이리라작업들이 매우 직접적으로 공포의 표현을 강제하지만공포영화보다 무섭지는 않다스산하게 느낄 지라도안전한 공포다확실하게 실제의 죽음과 공포는 캔버스 너머에 존재하는 탓이다. (갤러리공간이 극장처럼 관객을 시간과 공간에 강제로 묶어 놓는 구조가 아닌 것도 이유일 것이다)

5. 공포가 약하게 느껴지는 것은 또 다른 이유도 존재한다오늘날 사람들은 공포의 면역제를 잔뜩 복용한 상태다영화뿐만이 아니라 각종 매체가 각기 다른 죽음을 매일같이 잔뜩 선사하기 때문이다즐겁지는 않지만 매우 안전한 공포를이 점은 2관의 몇몇 작업들이 얼마간 암시한다텔레비전과 인터넷을 비롯해 수많은 매체들은 쉬지 않고 죽음의 소식을 전파한다간혹 생중계로 죽음을 관람하는 것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그 어느 때보다 죽음과 가까운 시대하지만 매체라는 막이 켜켜이 가로막는 시대매체는 모든 것을 매개한다죽는 순간까지도 말이다그렇다 보니영화처럼 즐겁지’ 않을지 몰라도 안전한 것은 비슷하다안전하게 화면 너머로 응시하는 죽음과 공포들.

6.인디아트홀 공은 이러한 공포를 즐겁고 안전하게 주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공장만큼 인간을 ‘부품’처럼 재현하기 좋은 장소가 있을까. 초현실주의가 마네킹(인형)을 자신들의 토템으로 삼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공장에서 제작한 인형은 숨만 쉬지 않을 뿐 인간과 형태가 똑같다. 인형에 관련된 괴담이 달리 많은 게 아니다. “정확히 말해서 작은 차이만 없었으면 비슷했을 사람들은 바로 그 작은 차이 때문에 낯선 느낌과 사람들 간의 반목을 일으킨다.”(프로이트) 숨만 쉬지 않는다는 차이, 하지만 그 때문에 공포는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2014 공포 이마고>가 ‘초현실적 공포’를 소재로 삼은 것은 타당하며, 실제의 작업도 뒷받침한다. 푸주간의 고기처럼 매달아 놓았지만 고기처럼 손질되지 않고 속만 게워낸 동물 같은 물체는 정확히 마네킹과 정확히 등가다.(이정서의 작업)

7.결국, 공포를 즐기는 것이란 ‘가상으로’ 죽음을 안전하게 경험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