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의 결 - 이은정
이은정 개인전
2023.6.16~6.25
갤러리 퍼즈
결국 그녀는 시간의 주름을 뚫어 경락을 열었다고 한다
글 | 배우리 (웍밴드 공)
1 이은정 작가는 간만에 사진을 꿰매는 중이다. 언제나 사진작업과 쌍이었던 ‘주름’ 드로잉 작업을 함께 불러온 것도 꽤 오랜만의 일인 것 같다. 활기차게 팔을 휘두르는 작가가 어찌나 반가운지, 그의 오래된 새 작업을 보고 있노라니 그야말로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 하지만 이 일상이 위태로운 환상일 뿐이라는 걸 모두 알게 된 현재, 작품의 의미 또한 조금 달라졌으리라. 이를테면, 우리는 그녀가 꿰매놓은 나무들 사이에서 기후 위기와 생태 문제에 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인간의 껍질을 보면서 시간을 상상하고, 나무의 껍질을 보면서 자신의 살을 겹쳐보는 그는 ‘되(어보)기’나 보호할 대상―여전히 서양의 인간 주체에서 벗어나지 못한―으로 자연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쭈글쭈글 말라버린 사과와 ‘살’색의 돼지와 인간이 그저 한 공간과 시간에 놓인 존재들이라는 걸 몸으로 그려낼 뿐이다. 적어도 코로나19 전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2 언급했듯이, 작가의 작업은 크게 실로 꿰매기와 펜촉 드로잉으로 이루어진다. 과거와 현재에서 길어 올린 노동집약적 드로잉과 꿰매기는 서로 교차하며 평면과 입체를 만들어낸다. 2021년 제작한 대형 드로잉 [주름진 시간]은 곡선으로 잘려서 비정형의 입체물이 [주름진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일정하게 그어져서 쌓인 일명 ‘시간의 주름’은 턱턱 접혀 탈구된 채 새로운 지층 혹은 틈을 생성한다. 이 작가는 주름의 속을 들춰보고 싶게 하는 재주가 있다. 꿰매면서도 실재를 봉합하지 않고 더 벌린다고 해야 할까.
글 | 배우리 (웍밴드 공)
1 이은정 작가는 간만에 사진을 꿰매는 중이다. 언제나 사진작업과 쌍이었던 ‘주름’ 드로잉 작업을 함께 불러온 것도 꽤 오랜만의 일인 것 같다. 활기차게 팔을 휘두르는 작가가 어찌나 반가운지, 그의 오래된 새 작업을 보고 있노라니 그야말로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 하지만 이 일상이 위태로운 환상일 뿐이라는 걸 모두 알게 된 현재, 작품의 의미 또한 조금 달라졌으리라. 이를테면, 우리는 그녀가 꿰매놓은 나무들 사이에서 기후 위기와 생태 문제에 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인간의 껍질을 보면서 시간을 상상하고, 나무의 껍질을 보면서 자신의 살을 겹쳐보는 그는 ‘되(어보)기’나 보호할 대상―여전히 서양의 인간 주체에서 벗어나지 못한―으로 자연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쭈글쭈글 말라버린 사과와 ‘살’색의 돼지와 인간이 그저 한 공간과 시간에 놓인 존재들이라는 걸 몸으로 그려낼 뿐이다. 적어도 코로나19 전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2 언급했듯이, 작가의 작업은 크게 실로 꿰매기와 펜촉 드로잉으로 이루어진다. 과거와 현재에서 길어 올린 노동집약적 드로잉과 꿰매기는 서로 교차하며 평면과 입체를 만들어낸다. 2021년 제작한 대형 드로잉 [주름진 시간]은 곡선으로 잘려서 비정형의 입체물이 [주름진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일정하게 그어져서 쌓인 일명 ‘시간의 주름’은 턱턱 접혀 탈구된 채 새로운 지층 혹은 틈을 생성한다. 이 작가는 주름의 속을 들춰보고 싶게 하는 재주가 있다. 꿰매면서도 실재를 봉합하지 않고 더 벌린다고 해야 할까.
작가는 기존 작업들을 활용해 입체물 외에도 다양한 작업 형식을 시도했다. (완성된 작품도 다시 보는 자유분방한 작가에게는 선형의 시간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회화 작업 중에는 얇게 깎은 나무의 속살을 붙인 것이 있다. 작가는 그 위에도 펜촉으로 ‘결’을 쌓아올렸다. 그야말로 나무의 살에 인간의 살이 겹쳐지는 작업이다. 이는 한 그루의 나무와 한 그루의 사람이 쌍을 이루는 사진 부조 작업으로 이어진다. 사진 부조 역시 캔버스에 실로 꿰매서 고정했다. 모든 역사와 이미지가 왜곡되어도 결코 바뀌지 않을, 우주와 생명을 담은 나무. 그것을 닮아가는 사람. 물론 여기에서도 느닷없는 합일이 아니라 작가에게는 늘 겹쳐있던 인간과 나무의 결일 뿐이다. 인간의 살도 나무 껍데기에 불과하니까 쭉 찢어진 인간가지 속 엉덩이를 보고 놀랄 것도 없다. 또 재밌는 것은 [주름진 상자] 연작. 그녀는 빈 상자에 직육면체로 맞춰지는 곡선의 ‘주름’ 퍼즐을 담았다. 작가가 담은 시간을 언제나 구비 구비 펼칠 수 있는 다중우주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작가가 말하는 ‘시간’은 모든 생이 묻혀있는 지층인 셈이다.
3 이은정 작가의 일련의 작업을 보면 그가 어떤 정해진 형상이나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목적적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다. 도대체 작가로 하여금 몸 쓰기를 계속 하도록 추동하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물론 내 나름대로 남한 작가군을 대상으로 생각해본 이유가 있는데, 대다수 작가들이 당장은 무용한 작업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가능하지는 않지만) 이 무지막지한 신자유주의의 기세를 제어하는 일에 본의 아니게 일조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건 선한 신이 수행하는 일일 것이다. 수도원이나 사찰이 미래를 지연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작가 본의가 아니다.
그러다가 종이에 날카로운 펜촉이 시원하게 그어지는 소리가 귀에 닿았다. 중학생 시절 필기를 할 때부터 애용했다는 펜촉의 벅벅 긋는 소리는 듣기만 해도 혈액순환이 된다고나 할까. 작가가 펜촉으로 일종의 기체조를 하는 것은 아닐까. 주구장창 그어대는 이유는 그어야 살기 때문이려나. 이 예술가는 펜촉을 매개로 오돌토돌한 나무살(종이)의 기를 받으면서 동시에 나무살에도 자신의 기를 불어넣어주며 생을 영위해 온 것이다.
학부시절 우연히 시작하게 된 꿰매기도 마찬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해체적 사물, 공간, 시간의 현현으로 시작했던 꿰매기가 과일, 돼지, 나무로 확장되고 마침내 순환을 위한 침놓기에 이른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확실히 그의 꿰매기는 여성적이거나 장식적, 공예적인 것도 아니고 연민이나 치유는 더더욱 아니다. 작가가 들이는 시간이 만들어내는 결(주름)로 겹쳐지고 하나가 되는 인간과 식물은 바느질로 뚫린 경락을 따라 서로의 기氣를 주고받는 것이다. 이러니 ‘되기’의 과정은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0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3층 이은정 작가가 머물고 있는 스튜디오 통유리창 바깥으로 플라타너스와 가로등이 나란히 서있다. 작가는 가로수가 가로등만큼이나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걸 새삼 실감한다고 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나무를 우리 앞에 다시 마주서게 했다. 아니, 서로의 살을 맞부딪치게 했다. 수도자 같은 예술가는 시간이든 공간이든 자꾸 잘라내고 다시 꿰매고 하면서 껍질 속으로 자꾸 들어가 보라고 권유한다. 어떤 사람은 여전히 그것들의 껍데기만 볼 것이고, 어떤 이들은 그것들의 혈관과 체관까지 볼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그것들이 서로 기를 주고받는 것까지
그러다가 종이에 날카로운 펜촉이 시원하게 그어지는 소리가 귀에 닿았다. 중학생 시절 필기를 할 때부터 애용했다는 펜촉의 벅벅 긋는 소리는 듣기만 해도 혈액순환이 된다고나 할까. 작가가 펜촉으로 일종의 기체조를 하는 것은 아닐까. 주구장창 그어대는 이유는 그어야 살기 때문이려나. 이 예술가는 펜촉을 매개로 오돌토돌한 나무살(종이)의 기를 받으면서 동시에 나무살에도 자신의 기를 불어넣어주며 생을 영위해 온 것이다.
학부시절 우연히 시작하게 된 꿰매기도 마찬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해체적 사물, 공간, 시간의 현현으로 시작했던 꿰매기가 과일, 돼지, 나무로 확장되고 마침내 순환을 위한 침놓기에 이른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확실히 그의 꿰매기는 여성적이거나 장식적, 공예적인 것도 아니고 연민이나 치유는 더더욱 아니다. 작가가 들이는 시간이 만들어내는 결(주름)로 겹쳐지고 하나가 되는 인간과 식물은 바느질로 뚫린 경락을 따라 서로의 기氣를 주고받는 것이다. 이러니 ‘되기’의 과정은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0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3층 이은정 작가가 머물고 있는 스튜디오 통유리창 바깥으로 플라타너스와 가로등이 나란히 서있다. 작가는 가로수가 가로등만큼이나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걸 새삼 실감한다고 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나무를 우리 앞에 다시 마주서게 했다. 아니, 서로의 살을 맞부딪치게 했다. 수도자 같은 예술가는 시간이든 공간이든 자꾸 잘라내고 다시 꿰매고 하면서 껍질 속으로 자꾸 들어가 보라고 권유한다. 어떤 사람은 여전히 그것들의 껍데기만 볼 것이고, 어떤 이들은 그것들의 혈관과 체관까지 볼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그것들이 서로 기를 주고받는 것까지
주최 : 갤러리 퍼즈
글 : 배우리
번역 : 오원석
전시 코디네이터/디자인 : 조병희
음악 : 조음사
협력 : 공간투
출판 : 웍밴드 공
글 : 배우리
번역 : 오원석
전시 코디네이터/디자인 : 조병희
음악 : 조음사
협력 : 공간투
출판 : 웍밴드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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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G
우리는 사회문제에 대해 예술로 사유하고 말을 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간]투’는 창작의 과정을 돕는 매개체로서의 공간입니다. We believe that we can think and talk about social issues through art. ‘Art Space GONG-gan TOU’ is a space as a medium to help the creative proce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