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크롬 페어링

모노크롬 페어링
MONOCHROME PAIRING
2024.9.5~9.15
권상록 서서희 최세진
모노크롬 페어링

기억은 소멸의 과정을 통해 화자에게 저장된다. 그 과정의 이미지는 창작자가 만들어낸 그을림을 통해 안착되곤 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을림이라는 영역에 안착되는 이미지를 다룬다. 이에 관여된 원본의 사건은 현재에 있어서 있는것도 아니고 없는것도 아니다. 다만 그을림에 있던 시공간의 영역은 시간이라는 것에 조금더 긴밀한 관계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그을림은 상흔으로서 대게 방치되게 이른다. 방치된 소멸은 상흔과도 같다. 노스텔지어라는 반짝였던 순간으로 기억에 남아있을 수 있지만 상흔은 그리움에서 상실이 되어간다. 적어도 이 과거를 통하는 창구가 된 그을림은 이 사라짐이 다시 반복되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시간의 일시적인 표시처럼 보인다. 이 일시적인 상태는 평면의 작업들과 유사한 시간성에 엮어진다.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서 원본의 사건이 어떻게 왔는가에 대해 시간을 연상시키는 것은 잔해를 보며 색, 냄새, 원형을 만들어간다. 그을림과 기억의 재현은 유사함이 있지만 시간의 영속에 의해서 상흔과 아픔이라는 것이 공유될 수 없게 된다. 상흔이 반복될수록 아픔 또한 소멸된다. 보이는 것이 반복될수록 그 의미는 사라진다. 가끔은 이 이미지들이 순간으로 남았으면 좋겠고 보고 싶어지지 않을수도 있다. 버려짐에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이유를 생각하고 싶지 않아 버려지기도 한다. <모노크롬 페어링>은 그을림에 상태까지 도달하는 영역에 얽힌 의식을 잃은 몸, 언어가 소멸된 풍경, 과거가 보존된 반성문을 통해 이미지의 탈색과 시간의 마모를 다루고자 한다.


권상록 – 회화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게임이라는 풍경에서 서버의 입구가 봉쇄됨으로서 주체를 잃어버리고 변화한 상태로 그 세계에 남겨지게 된다. 서버의 플레이어로서 의식을 잃은 몸 즉 껍데기체가 되어가는 상태에 주목하고자 한다. 인물화라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자아라는 의지를 상실했기에 의식을 잃은 몸은 입자로서 풍경이 되어가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풍경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인해 플레이어는 ‘로딩’이라는 표현에 의해 분열되고 생동감을 잃어가 기억의 너머로 이동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에서 머무는 플레이어의 의식을 표현한 작품들로 구성해나갔다.

서서희 – 파편적인 이미지들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감각과 미묘한 균형에 의해 생겨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언어화 될 때 손상되고 사라지는 꿈 처럼, 꿈을 믿듯 이미지를 믿도록 하는 흐름과 닮아 있다. 이러한 흐름 속 징후로서 다가오는 풍경과 공포의 감각에 주목하며 이슥한 틈을 파고들어 근원적 형태에 가까워지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최세진 – 사진은 어떤 대상을 담을 것인가에 대한 행위가 아닌 어떤 시간을 담을 것인가에 대한 망설임의 세계이다. 성당의 조각상, 마네킹, 말라비틀어진 생선, 모든 것이 철거된 자리에 희미하게 남은 텍스트. 그리고 노인들. 우리는 물리적으로 같은 시간 안에서 조금씩 다른 속도로 침식돼간다. 결국 시간에 대한 두려움은 의심 없는 망각에 대한 두려움이며 잊힌다는 것은 버려지기 때문에 두렵다. 호흡과 무게가 희미해지며 시야에서 사라지려고 하는 것들, 사라진 것들을 사진으로 못 박아둔다. 검게 고정된 이미지들은 꼼짝하지 않지만 해석과 의미는 계속해서 변하며 시간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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