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복
김진 작업의 요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다시 한 번 더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데 있다. 작품의 형식이 여러가지 내용들을 설명해주지만, 그 설명들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점, 즉 핑크색을 앞에 두고 ‘핑크는 없다’라는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한 번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작가의 작업을 세부까지 해석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용은 항상 일반적인 것들의 정중앙 있으며, 아무리 정확히 해석을 하려 시도한데도 전체적인 이미지를 표현해놓는 것에 불가하다. 다시 말해 완벽한 하나의 순간이 맞아떨어지게 옮겨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김진 작업을 해석을 위한 확실한 방법은 은밀한 작가의 내용을 찾기보다는 선입관없는 정신으로 작품 속으로 파고 들어가며 작업에 접근하는 것이 적절하다.
김진의 정물은 분명 부자연스럽다. 심할 정도로 단순화 한다면 말 그대로 ‘핑크밖에 없다’. 그럼에도 ‘핑크는 없다’라는 역설적 전시명을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김진의 정물이 전환과 대체의 결과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전환하고 대체한 것인가. 기존의 인상파 화가들은 산업화의 시대 풍경을 공장, 기관차, 역과 같은 배경으로 녹여 표현했다. 산업화는 그 시기를 다했고 시대는 자본주의와 소비사회의 폭주시대로 전환된다. 사회의 풍경뿐 아니라 생산되는 사물 역시 삶에 쓰이는 것이 아닌 그저 소비를 위해 소비하는 방향으로 성격이 전환됐다. 동시에 사회가 발산하는 색 역시 동시대의 자본주의와 소비사회에 대한 회의와 근심의 색으로 대체됐다. 사회의 정서적 분위기가 사물에 끈덕지게 들러붙어 있는 모습, 맹목적인 소비 신화가 사물에 내리쬐는 빛의 형태. 작가가 포착한 풍경은 전환된 빛과 색채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