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 개인전
뻐꾸기 지하실
2019.7.2 – 7.7.

외부의 객관적인 현상들과 정보들을 개인이라는 사람이 받아들이고 해석함에 있어 모두가 다르다는 것, 그때부터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다른 우주를 가지고 있는 소우주의 존재들 이라는 걸 인지했습니다. 그럼에 있어 다른 우주를 관찰하고 재현하기 이전에 나 라는 존재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겨난 공간이고 어쩌면 제가 저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거울과도 같은 화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간속에 물이 채워져 있다는 건 공간의 깊이를 모른다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도 제가 얼마만큼의 심연을 머금고 있는지 확신 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기둥들은 감각의 회로이자 저의 심리를 단단하게 지탱해줍니다. 숲 이라는 작업에서는 기둥이 산을 붙들고 있는 나무가 되기도 하고 도시를 이어주는 다리(bridge)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공간의 의미란 입구도 출구도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미로와도 같은 공간입니다. 미지의 세계 안에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습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저의 장기기관 같은, 혹은 팽창하는 우주 같은 그런 공간입니다. 무한한 공간의 연속이고 그 공간의 종착은 없습니다. 만약 공간의 종착이 있다면 그건 저의 소멸입니다.

저의 공간에 들어왔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통하고 설득합니다. 어느 정도 교차하는 지점은 분명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저 공간이 다른 세계로 완전히 흡수 되거나 반대로 다른 세계가 저의 공간과 완전히 일체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개인마다 세계관이 다르다는 말이 있나봅니다.

다소 서양의 존재론적인 이론에 더 가깝다고 느껴질 수 있으나 더 멀리 나아가 보면 결국 동양의 관계론에 다가가기 위한 첫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른 세계와 최대한 많은 면적을 일치시키고 싶다면 우선 제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제가 사유하고 있는 것들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며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상황들을 여러번 반복함으로써 한 걸음 나아가리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