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그 너머를 그리며 모이다.

– 나일민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사실 땅 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그게 곧 길이 되었다”   – 루쉰(魯 迅)의 「고향」 중에서
 

1.

인간은 기억과 함께 산다. 과거의 사건을 추억하고 간직하는 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는 기억행위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적인 활동 중 하나일 것이다.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인간이라면 모두가 한 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 그리고 그 고양된 순간의 희망과 좌절, 패배와 분노의 기억을 되새기며 살아간다. 순수한 마음과 왕성한 생명력으로 세상과 교섭했던 순간의 기억 없이 살아가는 그 삶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루의 기억만으로 살아가는 삶은 하루살이의 일생보다 더 비극적일 것이다. 결국 기억이라는 것은 유한한 인간의 생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생의 의미를 부여하고, 존재의 연속성과 고유성을 확인하게 하는 버팀목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공유하며 인간은 신화와 전설을 만들고, 공동체를 형성해왔다. 때문에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보르헤스는 ‘기억한다’를 “신성한 동사”라고 했다.
 

2.

올해로 5회 째를 맞이하는 카포(Kapo, Kanazawa Art Port)와 인디아트홀 공의 국제교류전 《보이지 않는 벽》은 그런 의미에서 예술과 기억의 힘, 그리고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전시이다. 전시는 작가 하진과 이은정이 2019년 여름 일본의 이시카와(石川)현 카나자와(金澤)의 지역예술가 공동체인 카포에서 약 3주간 체류하며 ‘보이지 않는 벽’을 주제로 제작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카나자와는 동해에 면해있는 인구 45만명 정도의 지방 소도시이지만 작은 쿄토라고 불리는 고도이다. 16세기 중반부터 시내 중심에 위치한 카나자와성과 켄로쿠엔 정원을 둘러싸고 상공업을 중심으로 발달한 이 도시는 마에다가(家)라는 한 가문의 강력한 통치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158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의 핵심 무사였던 마에다 도시이에는 도요토미에게 절대적 충성을 맹세 후 이 지방의 영주권을 보장 받게 된다. 그 후 마에다가는 14대 300년 동안 중앙정권의 신뢰와 이시카와 곡창지대의 쌀 수확에 따른 세수에 의해 막강한 재력의 다이묘(大名)로 성장했고, 이 재력을 바탕으로 문화를 부흥시켰다. 여전히 전통 방식으로 행하는 금박과 염색 공예, 그리고 세련된 세공과 칠 기술은 카나자와가 자랑하는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이 도시가 과거의 유미주의적 전통에만 머물러 있는 것만은 아니다. 2004년 21세기 미술관의 개관과 2014년 신칸센의 개통으로 카나자와는 연간 700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미래를 향해 열린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한편 카나자와는 한일 양국 간 교섭의 역사와 과거에 대한 상반된 기억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 곳은 오래 전 삼국과 발해를 출발한 배들이 동해의 차가운 바람과 파도, 거친 해류를 넘어 일본도에 도착하고 왕래한 곳이라고 한다. 또 1932년 상해 훙커우 공원 폭탄 의거로 항일 민족 독립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던 윤봉길 의사가 오사카를 거쳐 비밀리에 이송되어 처형, 암장 당한 후, 묘비도 없이 많은 이들의 발에 무참히 짓밟힌 장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른 역사적 기억이 교차하는 카나자와라는 비일상의 공간에서 하진과 이은정은 도심 속 지각되거나 지각되지 않는 벽들의 존재를 사유하고 시각화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전시 제목 《보이지 않는 벽》은 이들의 관심이 비단 자연발생적인 또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세워진 물리적, 건축적 벽뿐만 아니라, 문명의 시간 동안 견고해진 다른 세계관과 이해관계로 만들어진 심리적, 문화적, 상징적 벽들로까지 확장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은정의 <주름진 벽, 2019>은 천장에서 바닥까지 길게 늘어진 6개의 건축용 트레싱지롤과 바닥에 세운 3개의 종이기둥, 그리고 몇 점의 데생들로 구성된 설치이다. 작가는 한국에서 가져온 얇고 반투명한 제도용 투사지와 흑연을 가지고 레지던시 공간이 위치한 테라마치 지구의 건물 외벽들을 프로타주 기법으로 떠내고 데생으로 남겼다. ‘절 마을’을 뜻하는 테라마치는 70여 개가 넘는 사원들과 작고 비좁지만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전통 목조가옥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16세기에 마에다 가문은 카나자와성을 방어하고 민심을 모으기 위해 수많은 사원들을 시내에 집결시켜 놓았다. 50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곳엔 여전히 검은색 기와와 흙담, 그리고 수백 년을 지켜온 거목을 품은 비밀스러운 정원을 자랑하는 절들이 밀집해 있다. 이른 아침엔 절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주민들은 자전거와 작은 자동차를 이용해 활기차게 일터로 향한다. 낮 시간엔 그곳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로 붐비고, 골목 구석구석엔 복구된 수로에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곳이다.

벽은 공간을 거쳐 간 존재들의 삶의 서사와 기억들이 응축되는 곳이다. 벽은 건축의 피부로써 외부환경으로부터 거주자를 보호하는 안위의 수단임과 동시에, 그 곳의 수많은 삶의 풍경과 이야기들을 목도하며 품어가는 존재이다. 바다 가까이 위치한 도시의 습한 바람과 강한 햇빛, 그리고 잦은 비는 테라마치의 건물 외벽과 전봇대 곳곳에 깊은 주름과 상처, 녹슨 자국들을 남겨 놓았다. 이은정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나무 벽들의 상처 난 결이나 주름, 또 뜯겨진 전봇대의 녹슨 표면과 회벽의 틈을 통해 벽의 시간과 기억을 상상한다. 한 낮의 폭염을 피해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도심을 거닐면서, 또 어느 더운 날 윤봉길 의사의 암장지로 향하던 먼 길 위에서도 작가는 부지런히 헤진 벽의 표면과 주름들을 트레싱지로 감싸고 흑연을 쥔 손으로 어루만진다. 긴 세월 동안 만들어진 벽 표면의 요철과 틈, 상처들은 흑연이 지나는 곳마다 예기치 않은 패턴과 형태를 드러내며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이를 두고 작가는

“사람의 벽은/
바람에 상처 나고/
햇빛에 바래고/
빗물에 녹슬어/
자연을 닮아간다./
금이 가고 파이고/
뜯기고 긁힌 자국들은/
산수화가 되고 지도가 된다”

고 표현한다. 결국 작가에게 단단한 부동의 벽을 가벼운 종이 위에 떠내고 전시 공간에 옮겨 새롭게 세우는 작업은 긴 세월을 침묵하며 버텨온 벽이 품어온 수많은 이들의 소망과 희망, 상실과 좌절의 이야기들을 복권하고 기억하는 행위인 것이다.

하진은 그 동안 도심 속 벽들이 세워지고 무너지는 과정과 흔적에 주목하여 인간이 욕망하고 만들어가는 것들의 유한함과 무상함을 데생과 설치와 같은 다양한 조형 형식을 통해 질문해왔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카나자와에 처음 도착한 날부터 매미의 죽음을 만난다. 카나자와 역사에서 찍은 죽은 매미의 사진과 텍스트로 이루어진 <Cigale, 2019>은 “너무 울어서/ 텅 비어 버렸을까/ 저 매미 허물은.”이라던 하이쿠(俳句)의 신(神) 마쓰오 바쇼(松尾芭蕉)와 같이 매미의 한살이 속에 담긴 세상사의 무상함을 간파한다.

작가는 한국에서 도심 속 후미진 곳에 쌓인 먼지나 모래를 모아 종이나 전시장 바닥에 흩뿌려 패턴이나 경계를 만들고 지우는 작업을 했다. 도심 속 모래는 욕망 가득한 재개발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워지고 무너지기를 반복하는 벽들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카나자와에 체류하는 동안 하진은 그곳엔 “먼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제 카나자와는 그 동안 외부에서 주도하는 난개발이 아닌 지역 주민의 거주환경을 개선하고 기능을 보강하는 데 주력해왔다. 스스로의 역사와 사람, 자연과 문화를 토대로 완만한 성장을 추구하는 ‘내발적 발전’의 본산지인 이 곳에 먼지(모래)가 없다는 것은 은유적 표현일 수도 있고,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하진은 전시 공간 바닥에 쌓인 먼지들을 비질로 쓸어 담아, 그 먼지로 無影(무영), 즉 ‘그림자가 없다’를 뜻하는 커다란 한문 텍스트를 입구 창문에 써 붙였다<無影, No dust in Kanazawa, 2019>. 또 일본 아마존 사이트를 검색하다 우연히 발견한 남미 아마존의 미색 모래를 주문해 전시장 바닥에 커다란 원의 형태로 흩뿌려 놓았다. Amazon.co.jp, 2019.

(벽의 눈물, 2019)은 전시 공간 벽 한 켠에 흐르고 있는 반짝이는 커다란 황금 눈물 두 방울이다. 한 때 은행 건물로 사용되기도 했던 전시 공간의 두꺼운 벽의 흰색 표면과 주름위에 – 마치 유리창에 빗물이 떨어지듯 – 천천히 스며들고 있는 이 눈물들은 작가가 카나자와에서 구입한 금박들을 조심스럽게 이어 붙여 만든 것이다. 일본의 국내 금박 생산량의 99%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카나자와의 금박은 금을 극한의 상태까지 늘린 것으로, 손으로 만지면 사라질 정도로 얇고, 미세한 숨결과 바람에도 쉽게 날아간다. 마에다 가문은 16세기 말부터 금박 기술과 관련된 다수의 장인들을 카나자와로 불러모았다고 한다. 비싼 가격 때문에 사찰 건축이나 불단, 불구의 장식과 함께 권력을 상징하는 위세품에 주로 사용되었던 금박은 이제 도심 곳곳에서 만나는 주된 관광 상품이 되었다.

하진에게 “벽은 증언할 수 없기에 눈물을 흘린다”. 무릎을 꿇고 바닥에 구부리고 앉아 몇 시간이고 먼지를 쓸어 담으며, 작은 떨림에도 으스러지는 금박을 세심하게 다루는 작업 방식은 근대화의 성공을 넘어 동아시아의 패권국가로 등장했지만 계속된 경기 침체와 재난으로 이어진 숨 가뿐 일본 역사의 주변부로 밀려나 잊혀지고 배제된, 그림자 속 존재들을 애도하기 위한 것 같다. 또 아마존 열대 우림의 향과 색을 상실한 관상용 모래는 인간뿐만 아니라 물, 공기, 모래, 하늘, 산과 같은 자연물까지도 세계로 뻗어나간 자본의 국경선 속에 갇혀 이동하고 소비되어 소멸하는 동시대 구조 속 존재 조건을 질문하게 한다.

두 작가 모두가 종이와 흑연, 먼지(모래)와 금박과 같은 얇고 가볍고 이동하기 쉬운 재료들을 사용했다. 또 문대고, 뿌리고, 붙이고, 그리며, 지우기 같은 가장 기초적이고 순수한 창작행위를 통해 반-기념비적 작품들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그들과 긴 시간 함께한 조음사(Joumsa)의 사운드와 동영상 작업으로 기록되었다. 작품들은 곧 다시 서울, 영등포의 인디아트홀 공으로 이동해 재구성되어 소개될 것이다. 이로써 전시는 국경을 넘나들며, 다른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지우고 넘어, 자유를 꿈꾼다.
 

3.

무역전쟁의 전운이 드리우는 긴장된 한일관계 속에서 진행된 이번 교류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보다 예술의 힘을 믿는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모여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 새로운 공동체를 그렸다는데 있을 것이다. 미술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과거를 기억하는 통로이다. 예술은 ‘지금, 여기’ 에서 터져 나오는 작고 낮은 이야기들이다. 예술의 목적은 새로운 진리나 규율, 대서사를 더하거나 권장하는 데 있지 않다. 예술의 윤리는 순수하고 자유롭게 생에 몸을 내 맡긴 날들의 희망과 좌절, 고통과 극복의 순간을 항구히 기억하는 데에 있다.

때문에 나는 한국-일본, 서울-카나자와, 영등포-테라마치의 예술 공동체를 잇는 이 전시를 통해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이념과 관습의 벽을 넘어선 새롭고 불온한 미학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상상한다. 공동체의 미학적 정의는 혈연이나 지연 또는 학연과 같은 공동의 이해관계로 모인 단체가 아니다. 같은 공간과 국가에 소속된 정치적, 사회적 목적의 집단도 아니다. 진정한 공동체는 아름답고 착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배려하는 순간, 존재의 고유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다가서려 애쓰는 바로 그 순간에 탄생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가 되어본 이들이 서로가 함께 한 순간을 추억할 때 그 공동체는 지속된다.

어제 빛났던 것이 오늘은 낡은 은 것이 되고, 모든 존재의 의미와 표현이 거만한 세계화와 소비주의 논리에 흡수되어 버리는 동시대 현실에서 우리의 삶이 내부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 외부의 기호와 기준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삶은 눈치 보기 바쁜, 긴장과 조급함의 연속인 전투 같은 삶일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생존과 생명의 권리를 요구하는 저항의 몸짓조차 자본의 욕망으로 녹여버리는 이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잊고 있으며,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에 헌신할 것인가. 제 안의 깊이와 향기를 지키며, 시들지 않는 감수성과 통찰력으로 세상의 벽과 경계를 넘나드는 창의적 실천들을 일상에서 지속되는 한, 그리고 그 대안적 시도를 함께 만들어갈 때 비로소 우리의 시야를 가리던 벽은 문이 되어 열릴 것이다.

이제 카나자와와 서울은, 그리고 《보이지 않는 벽》을 위해 모였던 모든 이들은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하지만 그 벽 너머 어디선가 살았고, 살고 있으며, 살아갈 세상의 모든 이들을 기억하며 모였던 뜨거웠던 한 여름의 꿈과 추억은 그들을 영원히 하나로 남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