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매 - 박철호

박철호 개인전
당매 (Dangmae)

2020.5.21-6.7
공동 기획 – 박철호. 조병희
큐레이터 – 이은정
서문 – 이인복
도움주신 분들 – 서찬석 유디렉 조음사 홍민기
주최 – 인디아트홀 공
협업 – 웍밴드 공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예방조치를 위한 공지사항

1. 별도의 오프닝 리셉션은 없습니다.
2. 전시 관람 시간 월,화 휴무 (수~일요일 오후1시~6시)
3. 입장시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 주세요.
4. 입장시 방명록을 반드시 기재해 주세요.
5. 관람시 관람객간 거리를 유지해 주세요.
김뵹철과 삼태기_mixed media_88x88cm_2020
거짓말만이 구원이다_mixed media_가변설치_2020
역방향과 순방향_mixed media_가변설치 (영상 13’19”)_2020
꼬리 없는 황소_mixed media_94x104cm_2020
야반도주중 UFO를 보다_mixed media_151x154cm_2020
누가 이 시간에 배달을 시켜_mixed media_110x114cm_2020
벌꿀오소리 화 크게 남_mixed media_104x119cm_2020
내 코가 길어지고 있어_mixed media_154x185cm_2020
아폴로눈병에 걸린 국회의원_mixed media_104x130cm_2020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상하게 생겼다.
그게 참 비극적이다. 그 모든 비극은 우화이고 그 우화는 멀리서 지켜보는 신과 닮았다.
찰리 마테우스 맥카튼 (Charles mateusz mcCarten)


쇼카마 이야기

당매라는 마을이 있었다.

그곳에서 할아버지는 포도농장을 하셨다. 포도농장은 매년 흉작이었다. 장마철에는 강이 불어나 마을이 잠기기 일수였다. 큰 홍수가 있는 시기에는 우리는 마을에서 제일 높은 언덕에 오락실로 대피해 비가 멈추고 물이 빠지기만 기다렸다. 매해 여름방학이면 물 불어나는 구경과 오락실 때문에 대부분 할아버지 집에 머물렀다.

유난히 큰 홍수가 있었던 그 해, 마을에 괴상한 일이 일어났다. 커다란 배가 난파되어 강 아래쪽으로 떠내려 왔던 것이다. 배와 함께 떠내려 온 모든 것들은 대부분 죽어 있었다. 그중에는 코끼리, 원숭이, 캥거루 사체도 있었다. 동물, 사람, 물건, 배 안의 죽은 모든 것들은 물에 불어 있었다. 살아남은 건 “마도로스 한” 이라는 사내와 “이시스메릴리” 라는 여자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온 벌꿀오소리와 벵골에서 온 부리가 빨간 새 한 마리가 다였다. 그나마 벌꿀오소리는 마을에 며칠 있다가 소 경매가 있는 날 소를 태운 트럭을 타고 떠나 버렸다.

우리는 마도로스한을 “한” 이시스메릴리는 “메리”라고 불렀다. 마을에서는 한과 메리에게 언덕 위 오락실에서 머물도록 하였다. 한은 난파된 배의 갑판과 화물상자들을 뜯어 낡은 오락실을 고쳤다.

메리는 체조 선수였다. 다른 나라에 대회가 있어서 배를 타고 가던 중 검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우리 동네까지 왔다고 했다. 메리는 나를 포함한 동네 아이들 대상으로 오락실 한켠에서 체조를 알려주었고 우유나 빵을 받았다. 부리가 빨간 새를 메리는 쇼카마라고 불렀는데 항상 새장 안에서 울기만 했다. 한은 항상 음악을 틀어 놓고 있었는데 쇼카마가 울기 시작하면 짜증을 내었다. 기계체조에 소질이 있었던 나는 겨울방학에도 할아버지 집에 머물렀다.

다음 해 여름방학이 끝났을 때 우리는 전국체전에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출전권이 마을에 도착한 날 쇼카마는 유독 크게 오래 울었다. 한은 화를 참지 못하고 쇼카마의 다리를 부러뜨려 버렸다.

그 뒤로 쇼카마는 울지 않았다. 나는 쇼카마가 불쌍해 새장을 열어두었는데, 하루종일 오락실 안을 날아다니며 분노에 찬 듯 갑판으로 만든 벽을 연기가 날 정도로 하루 종일 쪼았다. 그리고 밤이 되면 새장으로 돌아왔다. 메리가 바다 트라우마가 생겨서 우리는 경비행기를 타고 시합장으로 가기로 했다. 나는 한이 우리가 없는 동안 가여운 쇼카마를 죽일까봐 품에 넣고 비행기에 올랐다. 시합장에 도착할 때쯤 메리가 나에게 말했다.

“불쌍한 쇼카마를 하늘로 날려 보내줄까?”

나는 조금 서운하긴 했지만 그게 좋을 거라 생각을 했다. 메리는 비행기의 작은 보조창을 살짝 열고 쇼카마를 날려 보내주었다. 쇼카마는 난생처음 푸른 하늘에서 힘차게 날게 짓을 해 보였다. 그리고 비행기 프로펠러에 빨려 들어갔다. 엔진에서 쇼카마 타는 냄새와 연기가 나고 비행기는 어느 전나무 숲에 불시착했다. 비행기가 불타며 숲에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비행기가 다 타버리기 전에 우리는 화려한 체조기술을 써서 탈출하였다. 하지만 어디에도 메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체조실_mixed media_가변설치_2020
대탈출_mixed media_219x154cm_2020
연_mixed media_가변설치_2020
친애하는 박철호 작가님께.

인사말을 대신하여 먼저 이 편지를 읽는 당신께선 전시 서문을 청탁 받은 자가 어떠한 연유로 이러한 글을 썼을 지 궁금하실 겁니다. 평론이란 언제나 그렇듯 작품을 분석했다고 주장합니다. 허나 작품을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파악하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글이 얼마나 지리멸렬한 것인지 당신도 잘 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저는 작품의 이미지, 표현보다는 작품의 생각, 그러니까 당신의 생각에 대해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당신의 삶에서 산출된 이야기의 서사 구조가, 작품의 이미지에서 발견되는 형식이, 매번 동일한 지점에서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그 지점을 보며 기존의 허구적인 평론으로 당신을 속이고 관람객을 현혹하는 것이 당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바로 이것이 이 편지를 시작하게 된 동기입니다.

윤리학자 매킨타이어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삶과 행위를 이야기하고 의사소통 하며 역사와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간다고 보는 것입니다. 지난 당신의 작품들은 언제나 하나의 이야기에서 출발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한국사회가 당신에게 언제나 넘치는 서사거리를 제공했기에 가능했습니다. 국정농단, 탈원전, 동물학대, 그리고 세월호까지. 한심한 사회적 퇴행들을 당신은 서사구조로 엮어냈습니다. 논리적, 합리적인 것들의 성에 균열을 만들고 해체하여 저 역시도 같이 비웃고, 욕하고, 즐길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오래된 것들, 버려진 것들, 예컨데 사진, 낡은 집의 벽지, 수거장의 재활용 쓰레기들과 같은 것에 당신만의 서사를 끈덕지게 투사해 왔습니다. 허나 이러한 것들에 실체와 가치를 아는 존재는 당신, 즉 당신의 의식일 것입니다. 여기서 당신 작업의 특이성이 발생합니다. 일반 사람들이 인식할 수 없었던 심미적 가치나 상징의 세계를 당신만의 이야기로 현상해 내는 것. 어쩌면 이야기의 주제는 당신이 삶 속에서 보았던 것들. 아니 보고 싶은 것들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지는 언제나 늘 그렇듯 현실 속에서 어떠한 형식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니까요.

어떤 작업이든 이미지는 있기 마련입니다. 동시에 이미지만이 단서로 존재할 때 작가가 가진 내면의 중심으로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매번 깨닫습니다. 작가는 그 중심을 감추기 위해 여러 변형을 가함으로써 관객의 탐색을 어렵게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내면으로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곳곳에 이정표를 세워 관객을 초대합니다. 이를 위해 당신은 ‘당매’라는 서사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준비한 이정표를 보는 순간 전시는 폭력의 서사 아래 조금씩 섬뜩해져갑니다.

당매. 당신의 집에 들어온 당매. 조부모가 살던 마을, 당매. 집에 심어진 당매나무. 당매가 무엇인지. 당매가 사람인지, 마을의 이름인지, 나무인지 내가 그런 것들을 묻는다면 당신은 그것은 그저 이야기의 영역일 뿐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이 우리에게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심어두는 방법이기도 할 것입니다. 당신이 겪은 사실과 현상을 환상과 뒤섞는 방법 말입니다. 당신은 작업의 방향을 내면의 중심에 묶어둔 채 서사를 만들고 그에 맞는 이미지를 현상합니다. 떠오른 이미지는 종종 소재에 맞춰 서사를 변형시키기도 합니다. 이 같은 즉흥성은 관객에게 작품의 의도를 감추기에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됩니다.

“야반도주 중 UFO를 보다”, “누가 이 시간에 배달을 시켜”의 콜라주에서 나는 당매가 가진 폭력의 서사를 알 수 없었습니다. 지금껏 그랬듯 당신만의 아무말 대잔치로 비극을 애써 희극으로 포장한 줄로 알았습니다. 엉성하고 허약한 실소만을 불러일으키는 그러한 허구성으로 당매에 대한 섬뜩한 해석을 가까스로 감추려는 노력 말입니다. 하지만 집요하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실감이 여전히 작품에 있기에 이것에서 나는 당신의 특별한 정서적 반응을 확인합니다. 손가락을 삼킨 벌꿀 오소리도, 양복과 함께 사라진 독고당매도, 발이 잘린 쇼카마도, 침대 앉아 올림픽을 보면 눈물을 흘리던 누나도, 이야기를 담담히 전달하는 이야기의 화자도, 그리고 버려진 것을 마주한 채 천천히 붓질을 하던 인물도 모두 당신의 페르소나였을 것입니다. 폭력과 정서적 학대, 그로 인해 만들어진 당매들은 세계의 도처에 존재하고, 당신은 그것들을 그저 당연한 것들로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당매를 처리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입니다. 당신의 삶 속에서 엉겨 붙어있던 당매를 어떻게 처리할 지 고민하며 당신은 다시금 버려진 것들을 마주합니다. 이번에는 오래된 벽지, 고물상에 버려진 쓰레기들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당매도, 쇼카마도, 곡예단 누나도, 버려진 그것들과 너무도 닮았으니까요.

작가님. 이야기와 현실, 사실과 허구, 드러냄과 감춤, 웃픈 상황들에 대해 강조하는 기이한 당신의 작품들을 누군가는 낯설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묵묵히 보낸 당매들에 대한 당신의 시선과 작업이 바느질이 되어 세계의 벌어진 상처를 매우고 지나가고 있다는 것만 인식할 뿐입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당신이 나에게 꺼낸 말. 당신 스스로에게 던졌던 “왜 예술을 하고 있을까에”라는 물음이 떠오릅니다. 진짜 나를 대면하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입니다. 내 안의 욕망이 열등감, 상실감, 두려움 같은 것과 함께 지층처럼 단단하게 쌓여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해 작품이 언제나 세계와 자아의 대결로 인식된다면 그 세계 속에서 자아의 모습은 하나로만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작품 속의 수많은 자신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 실은 그것 역시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이번 전시를 통해 당신만의 예술 세계가 구축한 특이성은 무엇인지, 당신이 말한 작품 속에 내재한 결핍의 감정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필요한 열쇠 하나가 주어진 느낌입니다.

웍밴드 이인복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