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푸르구나

5월은 푸르구나
Song from GwangJu
주용성 지알원 채정완
2021.5.13-29
오월은 푸르구나는 1980년 5월 이후 태어난 세대인 청년 작가들이 어떻게 5.18 민주화 운동을 기억하며 살아가는지 질문하는 전시 프로젝트이다. 전시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가 기획하며, 미디어나 역사, 신화로만 5·18을 접하고 배워온 ‘포스트 메모리’ 세대의 작가들이 과거를 기억하고 해석하는 다양한 방식에 주목한다.
전시장 전경
작품 소개
Soundscape : JOUMSA – Song from May 1991
“… 이미 오월은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이다. 오월은 지역적인 문제가 아닌 민족의 문제이다. 오월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오월은 추억이 아닌 오늘의 현실이다. 오월은 민주다 통일이다 내일의 조국이다… ” – 소설가 박혜강 <운암대첩> 기록 중

꽉 채운 30개월을 저당 잡혔던 나의 군 생활 일기의 마지막 장은 “환멸과 치욕과 수치와 멍에의 날들이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깊은 상흔은 회한뿐’이라는 휘황스러운 수사로 장식된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다. 부끄러움으로 점철된 천일의 날 중에서도 1991년 5월에 대한 소리와 냄새와 촉각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 선명하다.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세 사람은 “보수대연합”이라는 미명하에 3당 합당을 선언했다. 당시 민주진영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김영삼은 군사정권 청산을 요구하던 민의를 뒤로하고 거대한 여당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노동운동, 통일운동,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도 점점 심해졌고, 1990년 11월에는 구속된 양심수가 1,259명에 달했다. 공안정국은 노태우 재임 기간 내내 지속되었고, 해가 바뀐 1991년 봄에만 분신 또는 의문사로 총 13명이 사망했으며, 2,361회의 집회가 있었다.

1989년 6월 입대를 했던 나는 전투경찰로 차출되었다. ‘빽도 없고, 운도 없는’ 놈들이라는 자조가 내가 속한 전경 부대에서는 스스럼없는 농담이었다. 특별한 기술도 남다른 체력도 없는 고만고만한 놈들을 모아 놓은 군인도 경찰도 아닌 신분으로 자긍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집단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내부적으로는 상하 계급 간의 구타가 일상이었고, 외부적으로는 폭력 경찰로서의 위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국가 공인 최말단 철부지 공권력이었다.

1991년 4월 백골단에 의해 사망한 고 강경대 열사의 운구차 광주 진입을 막기 위해 전국의 전투 경찰은 5월 광주에 집결됐다. 5월 13일 광주에 도착해 시내에서 산발적인 시위 진압에 동원됐던 부대는 5월 18일부터는 운암동 어린이 대공원 뒷산에서 밤새 학생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19일 새벽에 충돌이 일어나기 전까지 서로 담배도 나눠 피며 담소도 나누던 순간도 잠시 운구차가 톨게이트를 통과했다는 소식과 함께 학생들의 기세에 밀려 작은 산을 내려오는 동안 내가 속한 부대는 이미 기능을 상실한 패잔병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어린이 대공원까지 밀려 내려와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쇠파이프로 흠씬 두들겨 맞고 쓰러졌다. 쓰러진 상태에서도 매질은 계속됐지만 어찌된 일인지 정신만은 또렷했다. 10여 미터 앞에 5월의 신록을 즐기는 단란한 가족이 돗자리 위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순간 그 가족 중 아빠와 매를 맞고 있는 나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 가족의 아빠가 학생들을 진정 시켜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부모와 아이들은 너무도 평화롭게 김밥을 먹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를 모른체하던 그 가족이 전혀 밉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맞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기 때문이고,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던 결과다. 나를 둘러싸고 쇠파이프로 내려치는 7~8명의 학생에게도 작은 원망도 없었다. 형식상 때리는 것인지 방석복(전투경찰의 진압복)이 성능이 좋아서인지 아프지도 않았다. 모로 쓰러져 맞으면서 바라본 5월의 푸르름만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날 뿐이다.

그날 밤, 나는 광주가 집인 부대 동기 아버지의 차를 얻어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친구 아버지는. “여기가 어디라고 광주엔 와가지고… , 그러니 매를 맞지”라는 농을 하셨다. 그제서야 나는 광주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 했다. 나의 의지로 결정된 일들은 아니지만, 80년 5월 광주에게 호되게 회초리를 맞은 날이었다. 그때의 일이 “운암대첩”이라 불리는지는 최근에 알게 됐다. 당시 운암동에는 전투경찰 대략 15개 중대의 2,000여명이 집결해 있었고, 1991년 5월 투쟁 중에서 유일하게 학생들의 승리로 기록된 투쟁이었다고 한다.

조병희 (인디아트홀 공)
전시는 만남의 상태이다. 하나의 전시를 만들기 위해 기획자는 주제를 구상하고, 좋은 작가와 작품, 필자들을 섭외한다. 그렇게 모여진 작품과 이야기들은 한시적 시공간 안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함께 보고, 이야기하고, 움직이며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간다. 전시는 삭막한 대도시의 일상이 우리에게 독려하는 계획적이고 효율적인 교환 관계나 활동과는 차별화된 어떤 미학적 관계를 창출하는, 공생의 공간이다.

2021년 5월 인디아트홀 공에서 열리는 <<오월은 푸르구나>>는 동시대 청년 작가들이 5.18 민주화 운동을 기억하는 방식을 질문하는 전시이다. 전시의 기획은 5·18 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가 주축이 되어 맡았고, 미디어나 역사를 통해 5·18을 접해온 ‘포스트메모리’ 세대 작가들이 과거를 기억하고 해석하는 다양한 방식에 주목한다. ‘포스트메모리’는 홀로코스트나 제 2차 세계대전과 같은 계측할 수 없는 역사적 상흔을 경험한 이들의 후속 세대의 기억을 뜻한다. 이전 세대를 할퀴었던 과거의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다음 세대의 존재와 현실 밑바닥에 현재형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이 개념에 착안해, 전시 제목 <<오월은 푸르구나>>는 41년 전 5월의 기억은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상처들과 함께)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푸르를’ 미래 세대의 삶과 예술로 이어질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참여작가 3인, 주용성, 지알원, 채정완은 모두 1980년 이후 출생이고, 우리 사회의 경제 번영과 물질적 풍요, 디지털 문화의 세례 속에서 자란 밀레니얼 세대이다. 모두가 지난 십여 년간 사진과 회화, 스트리트아트등을 통해 기나긴 민주화 항쟁을 거쳐 이룩한 경제 대국, 한국의 허울과 이면을 드러내고 비판해왔다.

기획자는 5월이 되면. 30여 년 전 대학생 시절, 광주에서 군생활을 하며 시위진압에 동원되던 하염없던 봄날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5월에 대한 전시를 기획하려 했다고 한다. 그렇게 지난 일 년간 이 전시를 준비하며, 제도권과 변두리 전시공간을 오가며, 회화와 거리의 낙서나 스티커, 책, 사진, SNS 와 같은 다양한 매체와 공간을 넘나들며 쉴 새 없이 사회 비판적 이미지를 쏟아내는 다음 세대 작가 3인을 섭외했다. 채정완이 그려내는 일그러지고 내팽개진, 불안과 불만 가득한 익명의 회색 도시인들, 지알원의 디지털로 복제된 핏자욱들과 미얀마 해시태그, 주용성이 사진으로 포착한 오늘, 광주의 박제화되어 퇴색한 기념 공간과 비현실적 도시 풍경은 아직도 풀지 못한 이념과 지역분쟁과 함께 일반화된 생존주의에서 도태된 잉여 존재들의 현실 구조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리고, 그 형상들은, 5·18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 이어지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적 재난과 아픔을 기억하는 세대가 지닌 부채감 및 연대감과 결합해, 국적과 문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타자들의 죽음과 주변부의 현실을 연결하고 있다.

이처럼 전시는 상이한 세대의 작가와 기획자가 만나, 과거의 시간표 속에 봉인되어 잊혀가는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그들의 양심(良心)에 기대어 기억하고 애도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기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느끼고 어떻게 보여줄지에 대한 판단과 선택, 그리고 이어지는 행위와 결과는 현실과 타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수반한다. 인간은 보기를 통해 세상을 만나고 느끼며 기억하며, 그 배움과 성장의 과정 속 나의 할 일을 상정하며 타자와의 관계를 그려가는 것이 바로‘삶’이다. 양심은, 그러한 인간 실존 관계와 경험의 준거가 되어,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끊임없이 따져 물어 반성하게 하여, 내가 믿고, 알고 있는 바를 행하여 나누게(con+scier) 한다. 그래서 나는 미디어와 설치가 지배하는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평면 작업을 고수하며 ‘사회적 이타심’을 촉구하는 작업을 지속해온 이 작가들과 영등포의 쇠락한 공장촌 골목 어귀에서 소수의 이야기, 다양한 가치들을 지지하는 대항적 예술 공간을 묵묵히 만들어온 기획자의 만남을 주목한다. 침묵할 수 없는 부조리와 비정상의 굴레와 악순환에 부단히 저항하고 소청하는, 행동하는 양심이 발현되는 삶으로서의 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전시는, 포스트 메모리 세대의 상상계는 더이상 분열이나 대립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그보다는, 과거의 폭력과 억압, 상실의 경험을 특정 지역이나 국가, 시대와 개인의 기억으로 점유하지 않고, 지금 여기의 삶과 이웃들, 나아가 어디에나 관계되는 기억으로 확장함으로써 새로운 연합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전시는 스스로와 타인의 마음과 삶을 아끼고 보살피기, 그 생활 속 반짝이는 작은 혁명들을 통해 코로나 19라는 전지구적 재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치유와 희망의 가능성을 내어보인다.

나일민(국민대/웍밴드)
○ 주용성
– 주용성 작가는 공권력의 모순된 행태에 의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죽음을 맞이한 자들이 시간이 흘러 현실의 정치적인 이유들로 애도되고 기념되는 상황들의 기이하고 비현실적인 풍경들을 사진에 담고 있다.
– 2020년 현재 민간인 학살지 발굴 작업에 직접 참여하여 <위로공식> 연작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용성_기억묘지 (연작)_Pigment Print_가변크기_2021
주용성_기억묘지 (연작)_Pigment Print_가변크기_2021
주용성_연상기억장치 (연작)_Pigment Print_가변크기_2021
주용성_연상기억장치 (연작)_Pigment Print_가변크기_2021
○ 지알원
– 지알원 작가는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소통을 통해 저항의 의미를 피력하는 작품을 제도권 내외를 구분하지 않고 발표하고 있다.
-2020년 5월에는 광주에 직접 내려가 5곳의 장소에 2019년 홍콩의 민주화 투쟁 당시의 풍경들을 광주의 거리에 남겨 놓았다. 홍콩의 이미지는 광주시민들에게 5.18의 기억을 다시 소환하는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지알원_움직이는 두개의 기둥_목재. 종이 위에 페인트마커와 스프레이 페인트_가변크기_2021
지알원_행진곡_Spraypaint on Wer tissue_가변크기_2021
지알원_#MYANMAR project_Single Channel Video_70min_2021
○ 채정완
– 채정완 작가는 대중문화의 코드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사회현상의 부조리를 은유와 풍자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사회적 정의를 헤치고 있는 현상들에 대한 개인의 ‘불만’에서 시작한 채정완 작가의 작품들은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연결되어 일그러지고 내팽개진, 불안과 불만 가득한 익명의 회색 도시인들을 그려내고 있다.
채정완_횡단보도_acrylic on canvas_112.1X162.2_2021
채정완_포토존_acrylic on wooden panel_180X300_2021
채정완_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_2019_acrylic on canvas_89.4x130.3
채정완_비난 게임_acrylic on canvas_145.5X97.0_2021
“나는 절대적으로 자신의 말이 옳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을 반대한다.” -알베르 카뮈

실증주의라는 탈을 쓴 야만적인 폭력, 바늘구멍으로 현상을 바라보는 것. 우민화. 기계적인 사유. 말라비틀어진 인간 존중.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저항할 군주가 사라진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인간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항해 싸울 것이라고 예언했다. 민주주의를 쟁취한 대한민국은 독재가 사라지자 거짓말처럼 민주화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실증주의, 거짓 화해, 국립묘지, 배상 등 갖가지 자극적인 단어들로 매체를 통해 소비되고, 입맛만 다시는 대중 앞에 광주 민주화 운동은 서 있다. 이야기가 끊임없이 안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확장되지 못한다. 광주에 대한 실증주의적 접근, 그것으로 인해 광주가 지닌 역사성과 인류애가 찢긴다. 팩트를 앞세우며 사상검증의 칼로 협박하는 행태들은 5.18을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도려내려는 저급한 수준의 책략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비인간적인 진창에서 뒤엉켜 함께 뒹굴고 있지 않은가. 물어보자. 광주는 우리의 역사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민주주의의 성립 단계에서 5.18은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자. 인간은 죽여도 되는 존재인가.

그곳은 지금의 세계보다 훨씬 끔찍하겠지만 폭발된 야만성은 무시되거나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곳에 무지했고 그 무지 덕분에 우리는 그곳에 대해 관찰자적 시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대중매체와 소셜미디어는 우리의 무지보다 더 신랄하게 광주를 우리에게 보여줬다. 80년의 광주에서 우리는 합리적 이성, 도덕성이 인간에게 존재한다는 믿음이 시달리고 무너져 내리는 것을 목격했다. 절대적으로 옳다는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권력에 대한 반작용으로 광주 민주화 운동은 시작되었다. 권력자가 자신의 명분에 대한 잘못된 신념으로 인해 인간 존엄이라는 국가의 기본적 가치를 뭉개버린 것이다. 이런 태도는 모든 관용을 거절한다. 파시즘. 그리고 네오파시즘. 먼 길을 돌아 한국에 도착한 유럽의 전염병은 토착화에 완벽히 성공했다. 사람들을 극단으로 밀어 넣고 그들이 이성을 잃었다고 합리화하는 일.

광주 민주화 운동의 미래를 가로막는 진정한 위험은 현재성의 상실이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현재 세대와 결합하여 미래로 확장되는 길은 지난시기의 감정적 측면에서 치우친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획득해야 한다. 하지만 광주항쟁에 대한 최근의 담론들은 정치적 책략에 갇혀 뉴스 이외의 매체로 벗어나지 못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포스트 5.18세대의 역할이 중요시된다. 포스트 5.18세대는 광주의 직접 경험자가 아니다. 하지만 포스트 5.18세대의 경제력, 끊임없이 이어져 나가는 서사, 언어, 다양한 사고 조직들. 그들이 존중하는 다양성은 그 끝을 인간의 기본적 가치에 대한 엄숙한 선언으로, 그것을 해하는 모든 통합을 거부하고 투쟁적이고 공격적으로 자신들의 가치와 신념을 수호한다. 이 세대들의 힘이 사회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부분에서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지난 시대에 드러난 야만성에 도전장을 던지고 인간 사상의 파괴에 대해, 경직된 도덕에 대해 저항할 것이다.

나는 밤낮없이 왜곡된 팩트를 들이밀고, 팩트를 가져오라고 소리치는 저급한 실증주의가 만들어낸 눈덩이 효과 덕분에 포스트 5.18세대가 태어났다고 믿는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사실들을 의도적으로 숨기든 왜곡하던, 그곳에서 사람이 죽었고, 인간에 대한 최후의 존엄이 파괴된 현장 자체에 분노할 이들이다. 그들은 우산 혁명을,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을 광주와 묶어 나간다. ‘발포 명령서’에 집착하는 미디어가 아닌 발포된 총알이 향하는 곳에 누가 서 있는지를 기억하는 것. 그 어느 때보다 인류애적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의 시각이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담론의 방향을 전환하고 민주화의 축제로 밀어 올릴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각, 생명력은 비합리적 이성의 영역 밖으로 벗어나 예측 불가능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기에. 결국, 이 시점에, 지금의 세대가, 광주 민주화 운동을 되새김질하는 것은 잿더미가 되어버린 인간 존중의 작은 파편이라도 발견하고자 하는 최후의 노력이다.

이인복(디스쿼터, 웍밴드)
주최 : 인디아트홀 공
주관 : AP-QQQ
기획 : 조병희
큐레이터 : 이은정
글 : 나일민. 이인복
포스터 디자인 : 채정완
디자인/편집 : 조음사
사진 : 홍덕선
홍보 : 박준식
전시보조 : 노태호 이해현 정재몽
협력 : 웍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