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현 - 생존(밥), 교환, 전개

2019.3.29(금) – 4.4(금)
venue
생존 – Space 9
교환 – ART on GONG
전개 – 상상채굴단
생존

지금의 나는 밥이 형성한 생물체이다. 세포의 생성과 소멸도, 살덩어리의 증식도, 지나온 기억과 경험도 내 작품도 모두 다 밥이 만든 것이다. 밥은 삶의 동기이며 결과이며 근원이다.

밥은 나의 존재를 규정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관계, 과학문명의 현재를 모두 응축하고 있다. 한 끼의 식사는 먹는 이의 생존방식(밥 벌이)을 표출한다. 요리방법과 식사과정에 등장하는 식기와 조리도구, 조리 방법을 보면 현재의 문화와 과학기술의 수준이 나타난다. 때문에 내가 밥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과정은 사회가 투과한 프리즘을 분석하는 것이다.

내 작품의 존재 의의는 한 가지 색으로 규정된 수많은 익명의 존재들의 몫을 찾고 표현하는 것에 있다. 과학문명의 혜택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끌고 있는 인력거에 담긴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다.

교환

모든 밥은 교환의 동기이자 결과이다.

밥은 생산이자 교환이며 분배이다. 지금 여기의 밥은 누군가의 생산의 결과물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밥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노동을 넘어 그 분의 안락함을 창출하기 위한 일과를 버티게 하는 최소의 에너지원이다. 지금 여기의 밥은 누군가가 투여한 노력 결과물의 일부를 대가 없이 가져온 불평등의 산물인 동시에 더 많이 뺏고 명령하기 위해 필요한 갈취의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밥은 분배의 징표이기도 하다.

밥을 벌기위한 과정은 인간이란 ​생물체가 사회적 관계와 질서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밥은 친근한 모양새로 누구에겐 단순한 채움의 대상이면서도 누구에겐 사교의 수단이자, 부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변화무쌍하게 존재한다. 밥의 다름은 삶의 차이로 인간의 같음과 충돌하고 있다. 나의 작업은 한결같은 일상 밥의 갈등을 드러내는 것이다.

전개

밥 맛 떨어지는 작품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 작업이 생존전쟁에 떠밀리는 당신에게 배부른 소리가 아니길 나는 원한다. 야근에 지친 사람들에게 내 작품이 추가적인 정신적 불편을 끼치지 않길 원한다. 나의 창작물이 섣부른 잠꼬대로 당신의 일상을 더 지루하고 짜증나게 만들지 않기를 원한다. 내 작품이 알량한 의도를 감추고 작가만의 유희를 위한 알쏭달쏭 장난이 되어 당신의 정신을 혼란케 하지 않길 나는 원한다. 이 바램들이 내 작품에 존재하는 실질적인 사용가치이길 바란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내 작업에 공감과 위로를 느낀다면, 그것은 최상의 교환이다.

나의 존재와 시간이 누구의 교환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지 않고 작업을 통해 갚는 것이 작자의 존재이유임을 깨닫는다. 나는 더 우직하고 더 투박하고 더 거칠게 긁고,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려서 체념의 굳은 살 속에 감춰진 삶의 상처를 예민하게 표현하기를 희망한다. 돈 잔치의 향연을 화려한 색과 모순적 개념으로 감추는 위선의 시대에 나는 진정어린 흑백과 긁기와 칼질로 버려지거나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주인공으로 구성하고 싶다.
play_circle_filled
pause_circle_filled
완벽한 미움
volume_down
volume_up
volume_off

전시장 (ART on GONG) 음악
music provider – KAZUMUS sound
text : 레이먼드 카버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중에서
www.kazumus.com

임동현_주워도_122×244cm (2EA)_charcoal on OSB_2019

임동현_삶 연쇄적 시간 7_23.7×25.7cm_Woodcut on paper_2019

L) 임동현_묻혀진 흔적(앞면)_43×58cm_Mixed media on acrylic plate(oil sitck, oil pastel, acrylic paint, scratch)_2019 / R) 임동현_묻혀진 흔적(뒷면)

임동현_삶, 연쇄적 시간 1_17×20.5cm_Woodcut on paper_2019

오늘의 밥 – 목명균 평론가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으려면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라는 말이 있다. 그게 누구이든 간에 연민을 불러일으켜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나는 강도를 좀 더 높여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의 뒷모습 보기를 권하고 싶다.

대학로 솜사탕 아저씨는 근처 건물 입구에 쪼그려 앉아 음식을 냄비째 놓고 식사를 하고 계셨다. 곧바로 코끝이 찡해졌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혼자 밥 먹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나 마음이 아파서 따돌림 받는 아이와 함께 밥을 먹다가 뒤통수를 맞은 적이 여러 번 있다.

쓸데없이 정 많은 사람의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혼자 먹는 밥은 도대체 왜 그리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일까? 혼자인 것과는 별개로 쓸쓸하고 초라한 이유가 아닐까?

요즘은 먹는 환경을 카메라로 찍어 드러내는 시대다. 그것은 재력, 여유, 인간관계 등을 포함한 나의 세계를 포장하고 과시하기 위함인데 초라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바꿔 말할 수 있겠다. 반갑게도 이 쓸데없이 정 많은 필자와 같은 시선을 가지고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가 있다. 임동현 작가는 카메라가 비껴가는, 살기 위해 먹는 밥상에 집중했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일용직 근로자들을 인터뷰하고 느낀 감정을 그림과 판화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 속 식사시간에는 웃음이나 이야기가 없다. 그저 묵묵히 씹고 삼킨다. 밥을 먹는 주체는 일터에 배경처럼 붙박여 있다. 심미적 즐거움도 당연히 없다. 일터는 신문지가 깔리면서 순식간에 밥상이 되고, 순식간에 다시 일터가 된다. 밥그릇과 국그릇, 종지, 접시 등을 대신해 언제고 쉽게 꺼내고 넣을 수 있는 밀폐용기만이 사용된다. 밥을 먹는 주체는 일!일!일! 이라고 외치며 모니터에 노랗게 붙어 있는 포스트잇보다 하위의 개념이 되어 버린다. 그것은 밥을 먹는 동안에도 근로자를 감시하고 옥죄인다. 사람은 주변과 같은 흑백이지만 생존만을 위한 그릇은 컬러로 그려져 있다. 그의 작품에서 사람은 사물이 되고, 컬러는 이렇게 슬픈 색이 되어버린다.

사람은 날 때부터 상처를 안고 태어난다. 몸의 상처, 상실감, 외로움, 절망감, 허무함 등은 생각지 못한 순간에도 불쑥 밀고 들어온다. 그것은 내가 먹고 살기 위해 일터로 나가지만, 감정을 배제한 체 살기 위해 최소한의 것을 먹는 상황에서도 느껴진다. 밥을 먹는 초라한 모습에서 연민이 느껴지는 것은 상처 속에서도 그 밥을 먹어야만 하는 굴레, 굴욕, 해결 할 수 없는 나약함 등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들의 상처를 목탄이라는 거친 재료로 표현했다. 이어서 그것은 표면을 긁어내는 행위로, 목판화의 특징인 칼자국으로 확대되었다. 밥을 먹는 사람의 얼굴, 환경, 손까지 모두 상처투성이다. 컬러로 그려진 생존그릇 또한 상처를 면하진 못한다.

작가는 애잔한 밥을 먹는 사람들과 섞이고 공감하며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자신 또한 위로 받는다. 그는 가짜 세상 속 음식을 먹는 이들에게도 말을 건다. 가짜 세상 또한 상처이기 때문에 너의 밥상은 행복하냐고 정 많은 오지랖을 부린다. 우리의 관계가 스테이크와 편의점 도시락처럼 다른 관계처럼 보일지라도 상처에 대해 함께 느껴보기를 권한다. 그것은 언젠가 필요할 온기가 되기에.
VR GAll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