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ideous Progeny

내 흉측한 자식 ( My Hideous Progeny )
김여홍. 백정훈. 신혜승. 우정환. 유주경.
윤지선. 이예슬. 이주호. 임지훈. 최지우. 허수진
2016.11.30 – 2016.12.6

4-5년간 같은 공간에서 작업하며 모인 열한명의 학생들이 어떤 것의 끝과 동시에 시작으로 인디아트 홀 GONG에서 ‘My Hideous Progeny’ 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함께 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열한명의 학생들에게 학교는 일상 속 괴상한 공간으로 동시대 흐름에 함께 하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 일정 거리를 두고 존재하고 있는 곳이다. 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각자 땅에 씨를 뿌리고 재배 하듯 작업했고, 이번 전시를 통해 그 결과물들을 손에서 떠나보냄과 동시에 외부와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준비한다.

전시제목 ‘My Hideous Progeny’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1931년판 서문 끝자락에서, 당 소설의 작가 메리 셸리의 작품 소개문에서 언급된 부제목“내 흉측한 자식”(My Hideous Progeny)이라는 단어에서 차용되었다. 이 기획의 착안은‘My Hideous Progeny’그 어문 자체로써 생산자가 갖는 이중적인 태도와 생산자-생산품이 연쇄적으로 역전되는 상태가 우리 열한명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행해졌음에 있다. 또한 현대 예술의 장과 개인들이 맺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맺게 될 관계에 대한 고민이 담긴 텍스트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생산’ 한 셸리는 끔찍하고 괴상한 작품에게 애증을 느낀다. 존재 그 자체로 사회에 여러 물음을 던지는 이 생명체들은 생산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공동체에서 관계를 맺으며 독립을 획득하게 된다. 그 독립이 갖는 것이 그 존재의 정체성이다. 우리는 과거의 이야기들과 모양새를 이것저것 기워 낸듯한 아름답고 흉측한 생산물들이 어떤 형상으로 세상에 존재할 것 인지에 대한 두려움과 궁금증을 갖고 그것들을 내보낸다.

소설 속 괴물이 그랬듯, 이 결과물들은 결국 홀로 이 세상을 걸어나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창작물-자식들이 마지막에 홀연히 사라짐을 원치 않는다. 전시는 열한명의 학생들이 애증으로 낳은 작품들이 이제 창작자에게서 독립하여 예술의 장과 공동체에서 관계를 맺으면서 어떤 형상으로 세상에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