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RI
2016 공포 : 고리
2016 FEAR :: GORI
2016.7.28 – 2016.8.14
서평주. 성유진. 송호준. 여상희. 오재우
주최 : 인디아트홀 공
기획 : 웍밴드 공 (이은정. 조병희)
행정 : 오원석
디자인 : 전민수
영상. 사진 : THE VIDEOS
sound : JOUMSA
후원 : 서울문화재단
한국에서 반복되는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세월호와 같은 대형 사고, 혹은 용산, 대추리, 강정, 밀양, 사드와 같은 논란의 과정들을 바라보면 ‘한국형 재난’, ‘한국형 참사’라는 말을 써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한국형’이라는 의미는 다들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업은 만약에 “원전 사고가 난다면”이라는 가정을 하고, 재난의 과정을 세월호의 타임라인에 적용시킨 것이다.
이 작업이 말도 안되는 ‘한국형 재난 소설’에 그치길 바랄뿐이다.
원자력이라는 말만 언급해도 불편해진다. 어느새 우리 생활에 깊숙히 침투하여 여러 다양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닌 위험은 상상을 초월한다. 원자력에 대한 구글링을 하다, 고대 발달한 문명이 원자력에 의해 멸망되었다는 증거들을 제시하는 글을 읽게 되었다. 상상해 본다. 어쩌면 우리가 과거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먼 어느 시대에 원자력으로 문명이 수차례 사라짐을 반복하지 않았을까? 이번 작업은 고대 벽화를 차용해서 원자력에 의해 기억되지 못한 문명의 탄생과 소멸의 반복을 역사의 기록처럼 표현했다.
우라늄에 대해 알아 갈수록 동정심이 생긴다.
안정적이고 싶어 절실하게 입자와 파장을 내뿜는 모습이 우리의 불안한 모습과 같아 보인다.
그런 너희들을 한곳에 모아 더욱더 불안하게 그리고 그 상태를 유지시키려는 장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과 너무도 닮아 보인다.
우라늄아, 니 잘못이 아니다.
안아주지 못해 미안해.
1. 우라늄 목걸이 (Uranium Necklace), 2010
자살하고 싶은 사람이 차는 목걸이
어떻게 죽음을 시음(death tasting)해볼 수 있을까?
설치:좌대에 설치된 우라늄 목걸이, 그 옆에 방사선 센서가 있다.
알파, 베타 입자들이 나올때 마다 센서가 인식하고
화면에서 ‘Die’를 보여준다.
2. 인류를 위하여 (For Humanity), 2016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Manhattan Project는
Leo Szilard에 의해 작성된 편지를 Albert Einstein이 서명하여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전달된 후 시작되었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진 후,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들 중 아인슈타인을 포함 몇몇은 평화를 부르짖었다.
프로젝트를 도중에 중단시킬 수 없었는지?
애초에 프로젝트를 시작안할 수 없었는지?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열등감 때문이었을까?
인류를 위해서였을까?
메롱~
설치 : 2개의 모니터.
모니터 A: 맨해튼 프로젝트의 역사, 과학자들의 환호에 관련된 인용문, 최초의 핵발전소와 맨해튼 프로젝트 등
모니터 B: 아인슈타인 메롱 영상
컴퓨터 + 센서장치
관객이 모니터 A를 보려고 다가가면 모니터 B의 아인슈타인이 ‘메롱’을 시작한다.
* 최초의 핵발전소인 Chicago Pile-1은 맨해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가동되었다.
** 볼수 없는 입자들의 공포는 내가 상상하는 만큼 다가온다.
생명과 도시를 순식간에 집어 삼키는 핵의 파괴력은 아이러니 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버섯 구름과 섬광을 내뿜는다.
여기 이 백색의 공간은 망각하고 감추는 세상의 모든 파괴, 폭력, 독이 되는 요소들이 있다. 아름다움과 파괴의 공존. 이 이중성을 통해 공포의 전야를 나타내고자 한다.
버섯이 자라나고 포자가 날려 번식하듯
파괴의 공포는 이 세상 구석구석 자라나기에.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다.”
“미래란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 가는 것이다.”
UAE 원전 수출과 요르단 연구용원자로 수출 후 한국의 원자력 산업계의 인사는 이런 말을 남겼다.
미래
‘미래’ 라는 말이 낙관적인 희망과 함께 쓰였던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유효기간이 끝난 것 처럼 보이는 지금에도 미래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한없이 낙관적인 사람들은 2년 뒤의 후쿠시마에서 엄청난 재앙이 일어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미래가 희망이 실현되는 시간인 만큼 예고된 재앙들이 실행되는 시간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미래가 얼마나 참담한 재앙들의 연속인지를 확인하면서 살고 있다. 불과 100여년 전 사람들이 꿈꾸었던 희망찬 미래는 과연 지금 우리가 겪는 이렇게 폐허가 되어버린 세계는 아니었을 것이다. 혁명의기운들은 완전히 소멸되었고 혁명을 믿는 사람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것이라고 믿기에는 인간의 탐욕은 개선되지 않는 난제이며, 전쟁은 끈임없이 이어지고, 민주주의는 집단 이기주의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흐르고 있다.
보이는 것들
시각적인 것이 왼에 인식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단계를 거친다. 원추세포와 간상세포를 통해서 색정보와 명암정보를 시신경으로 전달하면 그것이 대뇌에 전달되어서 인간은 시각적인 것을 인식하게 된다. 공리주의의 대표적인 학자인 제레미 벤담은 판옵티콘 형태의 교도소를 제안했다. 대상이 가시적인 범위에 놓이면 우리는 그것들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우리는 시각적인 것을 앎의 기본적인 속성으로 삼는다. 눈에보이는 것은 그 정체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를 볼 수 있는 하나의 장소, 혹은 하나의 눈. 알 수 있는 사람의 위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인 것이다. 보이는 위치, 볼 수 없는 곳에 위치한 사람은 사실상 알 수 없다. 우리는 구글 맵 이후의 세상의 모든 곳을 볼 수 있는 시대에 도래했다. 만약 내가 볼 수 없다면 그것은 나에게 제한된 정보지 그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카메라는 지구 밖 저 멀리서 나의 상공 5m 위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기억
그 많은 기억중에 그 기억만은 정말 그 순간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까지도 명확하게 기억이 나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반복되는 영상중의 하나는 2011년 3월 11일이다. 나는 당시에 남양주 근처의 펜션으로 작가들과 여행을 가기 위해서 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잠시 휴게소에 들러서 쉬게 되었는데 당시에 쉬고 있던 휴게소에서 일본에서 해일과 지진이 났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지진과 해일, 산사태와 산불, 수많은 재난들이 끊임 없이 일어나고 있으니 그 어떤것도 새롭지 않았고, 그 어떤 것도 충격적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당시의 장면들은 끊임없이 머리 속에서 반복되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전에도 몇번 유사한 경험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비극적이지만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다. 떠나지 않는 이미지를 계속 안고 살아갈 수는 없다. 다행히 뇌는 망각한다. 떠오르는 빈도는 줄어들고, 생각나는 것들은 흐려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물에 떠내려가는 집들과 폐허가된 마을, 폭발하는 원전은 기억을 떠나지 않는다. 원전이 폭파했다는 것. 폭발된 원전이 처리 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은 후쿠시마 사고가 단순히 자연재해의 하나가 아니었다는 의미였다.
보이지 않는 것들
후쿠시마 이후의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위협속에서 살게 되었다. 전세계의 방사능 농도지도를 본다고 해도 나는 방사능을 눈으로 볼 수 없다. 내가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주변에 갑자기 증가한 갑상선 암환자들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알고 지낸 지인이 갑상선 암에 걸렸고, 주변에 젊은 암환자들이 발생했고, 세 상을 떠나기도 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작년에 평온한 일상의 어느날 일어났다. 종합검진을 받고 온 아내에게서 갑상선 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었고, 종합병원에서 검진 결과 확진을 받았다. 나는 방사능을 볼 수도 없었고, 갑상선을 볼 수도 없었으며, 갑상선 안에 있다는 암세포도 볼 수 없었다. 수술이 끝나고, 수술 자국이 남은 아내의 목을 보았지만 한쪽의 갑상선이 제거된 흔적만을 볼 수 있었을 뿐 그 안을 볼 수는 없었다.
공포
미래, 기억, 생각, 의미, 가치, 방사능, 암세포.
이미지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사실 내가 위치한 곳은 보이지 않는 것들로 둘러싸인 곳 보이지 않는 곳이다. 나는 한국의 원전들을 찾아 보았고, 그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원전을 본다고 해서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원전을 보러 가게 되었다. 공포에 맞서고, 보이지 않는 것에 맞서는 방법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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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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