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노트)
간만에 해가 나와 작업실 앞 길가 벤치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던 내 눈에 그들이 보였다.
아슬 아슬 줄을 타는 곡예사.
한 발만 헛디뎌도
한 숨만 잘 못 골라도
한 순간만 놓쳐도
아찔한 저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기에
그 바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가늠 할 수 없는 고통과 외로움에 대한 공포로
충혈된 두 눈과 피곤한 두 다리로 겨우 겨우 흔들리는 줄 위에서 버티고 있는데…
하릴없이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그 위태로운 줄타기도 끝이 날텐데…
이 무시무시하고 적막한 서커스에 언제부터 내가 함께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관객인지 저 줄 위에 있는지,
누가 나에게 달콤한 빵을 주며 이 안으로 들어오게 유혹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니 그 기억은 이곳의 괴기함과 줄 위에 널려있는 절망들로 지워지고 있다.
기억해내야 한다.
그래야 출구를 찾아 이 무섭고 슬픈 서커스를 끝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