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 그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모래의 여자 : 그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김진
2016.12.7 – 12.18

<모래의 여자 –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글:이인복

아베 코보의 소설 <모래의 여자>은 주인공이 모래 사막으로 곤충채집을 나섰다가 모래 속 마을에 갇히게 된다. 끊임없이 모래가 흘러내려 모래를 쉴 새 없이 파내야 유지되는 마을. 사다리만이 유일한 탈출구인 모래 구덩이 속에서 주인공인 남자는 홀로 사는 여인과 함께 모래 퍼내는 노동을 강요받는다. 멍청해 보일 정도로 어처구니없고 무가치한 모래 구덩이의 삶이 남자에게 안겨주는 불쾌감과 솟아오르는 저항, 모래에 대한 여자의 담담하고 무조건적인 복종과 수용. 작품 전체에서 반복되는 모래 노동은 벗어날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실패로 확장되고 구조화된다. 남자의 관점에서 여자의 행위는 이치에 닿지 않는 헛짓거리에 불과하다. 허나 이 노동을 단순히 무의미, 무가치와 동일시 할 수 있을까?

이번 전시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면 소설 속 모래의 여자와 같은 작가의 담담한 수용부터 시작되야 할 것이다. 이 담담함은 단순히 작업의 실패만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지닌 세계관의 귀결이기에 더욱 그렇다. 김진은 총 9회의 개인전을 하였지만 최근 일 년 사이에 어떠한 작품도 완성하지 못했다. 실패가 분명하지만 작가는 누추한 현실을 애통해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인다. 누군가에게 ‘실패’는 거창하고, 요란한 사건을 상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에게는 그것이 묵묵히 가던 길을 계속 걷는 행위, 하던 일을 쉬지 않고 중단하지 않는 일이다. 다시 말해 실패는 반복으로, 그리고 반복은 잉여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자기 안의 실패를 길들이기 위해 작가는 세속의 규범과 다른, 자기만의 체계를 고안해내고는 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체계는 엄청난 양의 부산물이다. 물감을 섞고 나서 남아있는 부산물을 통에 담은 뒤 다시 캔버스에 칠하는 방식. 추상, 모노크롬의 작업도 아닌 단순히 색을 칠한 것뿐인 작업이 전시장에 버젓이 판매될 수 있는 지점 역시 이 같은 반복이 만들어낸 잉여 부산물에 있다. 실패의 잉여물이 칭송 받을 이유는 없지만 마찬가지로 고정된 질서에서 탈주하기 위한 작가의 필사적이고 반복적인 반복과 모험을 우리가 비난할 이유도 없다. 이 뻔뻔한 작업물과 작가의 태도 앞에서 그것들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는 ‘무가치’한 반복이 작가에게 있어서는 멈추지 않고, 지금 쓰러지지 않고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유일한 이유가 된다. 그렇기에 칠해진 캔버스의 핑크는 ‘너가 작업을 하는게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게 뭔데?“라는 질문 자체를 무너뜨린다. 이 순간 시인은 작품의 방법과 내용 사이의 적합성과 가치를 얻는다.

김진은 자신의 이번 작업이 ‘가치의 최소화’ 혹은 ‘무가치’라는 실험의 틀에 규정시킨 후, 회화 작가로서의 자신의 여정을 무한히 연장시키려 한다. 김진 스스로도 이번 전시를 ‘가치에 대한 하나의 시험’이라고 말한다. 이 연장은 열려있는 리듬을 지향한다. 다시 말해 작가는 무가치의 실험을 통해 자신의 실패를 정당화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리고 이는 그가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와 하던 일을 계속함으로써 존재의 열려있는 리듬을 지어내며, 캔버스에 작가가 그려야 할 것들의 동력이 된다. 작가의 목덜미를 잡아 혼돈의 구덩이로 밀어 넣더라도 그 곳에서 끊임없이 질주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럼에도 승산 없는 희망이 잔존하기 때문이다. 되지 않는 작업을 붙들고 모질게 다시 시작하고 거듭 시도하고 반복하고 절망 속에서도 몸을 일으키는 이유에 대해 작가의 대답은 간결하다. “내가 무엇을 그릴지 너무 궁금하기 때문에요.”

작가의 작업이 온전히 완성되는 날은 분명 올 것이다. 그때까지 김진은 자신의 작업을 ‘완성해줄’ 그 어떤 실험들을 지속하며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칠하고 그리는 반복과 실패 이외에는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시도들은 무모하고 무력하다. 그러나 반복과 실패야말로 유일한 무기는 아닐까. 그리하여 김진은 실패의 잔해들을 거닐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그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여전히 그려야 할 것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