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t still
2026.1.13~1.24
김연경 김현수 서원태 조혜정
CHO HYE JEONG
KIM HYUN SU
KIM YEON GYOUNG
SEO WON TAE
기획 : 조혜정
디자인 : 조병희
무빙이미지는 우리의 감각-운동 메커니즘을 촉발하는 운동이미지들의 연속이다. 우리는 익숙하게 행동, 반응, 서사적 흐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러나 이 흐름에 의도적인 파열이 발생한다. 움직이는 수많은 프레임들 속에서 멈춰 선 그 순간. 시간예술의 연속성, 멈추지 않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단 하나의 잔상을 추출하여, 움직임의 결정적인 정지를 만들어낸다.
동영상의 역동적인 서사가 붕괴된 운동의 잔해로 맥락과 서사를 숨기면서 찰나의 순간이 지닌 물질적인 존재감을 남기거나(김현수, 조혜정), 대상(사과)을 정지시키고 더 이상 운동을 기록하지 않으면서 시간 자체를 응시하게 한다(김연경). 시간이 더 이상 움직임을 따라가는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그 자체로 현존하게 되면서 시간-이미지로 등장하게 된다. 이미지의 구체적인 형상(구상)이 사라지고 빛의 점멸(추상)만 남게되면,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 무늬나 환각적 형상을 만들어내며 신경학적 연출을 일으킨다(서원태).
김연경의 작업은 운동과 정지의 문제를 역설적으로 다루고 있다. 피사체인 사과는 정지된 상태이다. 하지만 사과가 스크린에 투사되기 위해서 필름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16mm 프로젝터는 프레임들을 찰나의 순간마다 정지시켰다가 다시 다음 프레임으로 움직이는 기계적 운동을 반복한다. 매체의 기계적 운동과 피사체의 정적 사이의 긴장감이 극대화된다. 관객은 사과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프로젝터 빛의 진동과 미세한 떨림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되는 움직임의 잔상을 인지하면서 신체적으로 ‘not still’한 상태를 체험하게 된다.
김현수는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끊임없이 움직이는 감정의 잔상을 물리적 매체(종이와 화학약품)에 구현한다. 작가 생애 최초의 디지털 바다 사진은 시간의 멈춤, 즉 정지를 나타내는 증거이면서 고모의 부재와 연관된다. 비물질적 디지털 데이터를 시아노타입으로 전환하고 다양한 색지에 구현하는 과정은 운동을 의미한다. 매체의 변환과 함께 감정의 전이가 예술적 행위와 변주 과정을 통해 끝없이 움직이며 재생산된다. 슬픔, 분노, 그리움, 사랑… 시아노타입은 느린 시간의 흐름과 반복적인 노동, 다양한 감정의 층위와 기억을 다시 살아있는 것(not still)으로 만들려는 예술적 노력이다.
조혜정은 20여년 전 영상에서 추출한 ‘히빠리(기지촌 여성을 따라다니며 물건을 파는 여성)’의 스틸컷을 확대하고 이어붙여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잔상을 현재화된 존재론적 운동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정지된 이미지 뒤에 숨어있는 전체의 움직임. 프레임 밖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것(부재)을 드러내고자 한다. 20여년이 지금도 여전히 ‘not still’한 과거의 불의이며, 삶에 강렬하게 현실적인 존재로 침투하며 다가오는 것이다.
서원태는 16미리 필름으로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에어트레인 노선을 따라 선로와 공항의 구조물을 촬영하였다. 그 구체적인 장소를 상하좌우 대칭의 구도로 복제하고 재배치하면서 현실의 좌표가 사라진 추상의 시공간으로 바꾸었다. 플리커 효과가 고조되면서 장소의 실체가 사라지고 오직 시신경이 빛의 점멸에 반응하며 공간적 확장이나 거리감의 변화를 오인하게 되고 입체적 착각이 일어나게 된다. 물리적으로 평면에 고정(still)되어 있지만, 관객의 뇌 안에서는 끊임없이 팽창하고 움직이는(not still) 환영이 만들어진다. 이 작업의 부제는 My Debt to Picasso인데, 색채를 배제한 채 구조적 해체, 중심없는 구도, 촘촘한 격자 구조에 집중했던 피카소의 분석적 입체주의의 조형 언어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피카소가 콜라주를 통해 추상화된 화면에 실제 신문지나 모래를 붙여 현실 세계의 물성을 회복시키려고 했던 것처럼, 빛으로 흘어지는 추상적 영상 아래에 실제 모래, 화면의 컬러가 모두 빠져내려온 듯 컬러 모래를 둠으로써 추상이 자칫 놓칠 수 있는 실재의 무게와 시간의 흔적을 보완한다.
보이는 것(presence)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것(absence). 정지된 형태 뒤에는 수많은 프레임의 움직임들이 존재한다. 잔상은 정지된 형태로 남아있지만 이는 움직임의 잔해일 뿐이다.
동영상의 역동적인 서사가 붕괴된 운동의 잔해로 맥락과 서사를 숨기면서 찰나의 순간이 지닌 물질적인 존재감을 남기거나(김현수, 조혜정), 대상(사과)을 정지시키고 더 이상 운동을 기록하지 않으면서 시간 자체를 응시하게 한다(김연경). 시간이 더 이상 움직임을 따라가는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그 자체로 현존하게 되면서 시간-이미지로 등장하게 된다. 이미지의 구체적인 형상(구상)이 사라지고 빛의 점멸(추상)만 남게되면,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 무늬나 환각적 형상을 만들어내며 신경학적 연출을 일으킨다(서원태).
김연경의 작업은 운동과 정지의 문제를 역설적으로 다루고 있다. 피사체인 사과는 정지된 상태이다. 하지만 사과가 스크린에 투사되기 위해서 필름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16mm 프로젝터는 프레임들을 찰나의 순간마다 정지시켰다가 다시 다음 프레임으로 움직이는 기계적 운동을 반복한다. 매체의 기계적 운동과 피사체의 정적 사이의 긴장감이 극대화된다. 관객은 사과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프로젝터 빛의 진동과 미세한 떨림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되는 움직임의 잔상을 인지하면서 신체적으로 ‘not still’한 상태를 체험하게 된다.
김현수는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끊임없이 움직이는 감정의 잔상을 물리적 매체(종이와 화학약품)에 구현한다. 작가 생애 최초의 디지털 바다 사진은 시간의 멈춤, 즉 정지를 나타내는 증거이면서 고모의 부재와 연관된다. 비물질적 디지털 데이터를 시아노타입으로 전환하고 다양한 색지에 구현하는 과정은 운동을 의미한다. 매체의 변환과 함께 감정의 전이가 예술적 행위와 변주 과정을 통해 끝없이 움직이며 재생산된다. 슬픔, 분노, 그리움, 사랑… 시아노타입은 느린 시간의 흐름과 반복적인 노동, 다양한 감정의 층위와 기억을 다시 살아있는 것(not still)으로 만들려는 예술적 노력이다.
조혜정은 20여년 전 영상에서 추출한 ‘히빠리(기지촌 여성을 따라다니며 물건을 파는 여성)’의 스틸컷을 확대하고 이어붙여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잔상을 현재화된 존재론적 운동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정지된 이미지 뒤에 숨어있는 전체의 움직임. 프레임 밖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것(부재)을 드러내고자 한다. 20여년이 지금도 여전히 ‘not still’한 과거의 불의이며, 삶에 강렬하게 현실적인 존재로 침투하며 다가오는 것이다.
서원태는 16미리 필름으로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에어트레인 노선을 따라 선로와 공항의 구조물을 촬영하였다. 그 구체적인 장소를 상하좌우 대칭의 구도로 복제하고 재배치하면서 현실의 좌표가 사라진 추상의 시공간으로 바꾸었다. 플리커 효과가 고조되면서 장소의 실체가 사라지고 오직 시신경이 빛의 점멸에 반응하며 공간적 확장이나 거리감의 변화를 오인하게 되고 입체적 착각이 일어나게 된다. 물리적으로 평면에 고정(still)되어 있지만, 관객의 뇌 안에서는 끊임없이 팽창하고 움직이는(not still) 환영이 만들어진다. 이 작업의 부제는 My Debt to Picasso인데, 색채를 배제한 채 구조적 해체, 중심없는 구도, 촘촘한 격자 구조에 집중했던 피카소의 분석적 입체주의의 조형 언어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피카소가 콜라주를 통해 추상화된 화면에 실제 신문지나 모래를 붙여 현실 세계의 물성을 회복시키려고 했던 것처럼, 빛으로 흘어지는 추상적 영상 아래에 실제 모래, 화면의 컬러가 모두 빠져내려온 듯 컬러 모래를 둠으로써 추상이 자칫 놓칠 수 있는 실재의 무게와 시간의 흔적을 보완한다.
보이는 것(presence)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것(absence). 정지된 형태 뒤에는 수많은 프레임의 움직임들이 존재한다. 잔상은 정지된 형태로 남아있지만 이는 움직임의 잔해일 뿐이다.
김현수_project BADA_ Installation_2025
김연경_Apple II_Color l Silent l 4min 48sec l 16mm_2025
서원태_SFO (a.k.s my debt to piccaso)_Installation with colored sand, 16mm film to video(720*480)/ b&w video with color sand/silent/1hr_2010
조혜정_not still but moving, 16mm film scan (5 min) + 사진콜라주
김연경_Apple II_Color l Silent l 4min 48sec l 16mm_2025
서원태_SFO (a.k.s my debt to piccaso)_Installation with colored sand, 16mm film to video(720*480)/ b&w video with color sand/silent/1hr_2010
조혜정_not still but moving, 16mm film scan (5 min) + 사진콜라주
——————– Apple II
김연경 l 2025 l Color l Silent l 4min 48sec l 16mm
사과 연작의 두 번째 작업. 노란(Y) 텅스텐 조명 아래에 놓여있는 빨간(R) 사과 주위로 파란색(B) 직육면체가 둘러 쌓이고, 곧이어 사과가 사라진다. 동일한 패턴이 그린(G) 스크린과 암흑(B)을 배경으로 반복된다. 갖가지 방식으로 구현된 여러 색상들이 동일한 현상과 프린트 과정을 거쳐 하나의 필름 스트립 위에서 서로 동등한 지위를 지닌 채 영사된다.
2025년 스페이스셀에서 제작한 현상 기계와 컬러용으로 개조한 컨택트 프린터를 이용하여 완성되었다.
——————– project BADA
김현수 l Installation l 2025
히빠리「project BADA>는 ‘바다’라는 이미지를 단일한 대상으로 고정하지 않고, 서로 다른 이미지로 분화시켜 공간 전반에 흩어 배치한다. 각각의 이미지는 동일한 명칭 아래 놓이지만, 각기 다른 원본과 성격, 그리고 물질적인 조건으로 구분될 수 있으며 반복과 차이를 통해 관계를 형성한다. ‘BADA’는 바다를 영어로 번역한 단어가 아니라,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사용한 표기이다. 이는 바다를 특정한 풍경이나 대상으로 규정하기보다, 반복과 변형 속에서 계속 다른 상태로 나타나는 이미지의 과정을 열어두기 위한 선택이다.
바다는 종이와 조개껍질 위에 인화되며, 동시에 추상적 이미지의 형태로도 제시된다. 이미지 제작에는 태양광에 의존하는 시아노타입 인화 기법이 사용되며, 이 과정에서 이미지는 서로 다른 시간과 물질 위에 흔적으로 남는다.
1_ 그 사람과의 대화 “반짝반짝 예쁘네.꼭 보석 같아.”
“응, 그러게.
근데 나는 보석은 별로 안 좋아해.
이상하게 물 반짝이는 거 보는 건 또 좋아.
근데 물에 들어가는 건 너무 무서워.
어쩌다 이런 어른이 되었을까?”
“이상하네.
너 태몽이 다이아몬드였잖아.”
“내 태몽? 지금까지 아무도 나한테 그런 얘기 안해줬잖아.”
그 사람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어갔다.
“정확히는…다이아몬드만 있었던 건 아니고.”
그 사람은 손으로 허공을 한 번 그렸다.
“어디였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주변이 반짝였어.
물 같기도 했고.”
“바다였어?”
“글쎄.”
그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깊어 보였어.”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나중에 다시 바다에 오면,
그때 더 생각나면 말해줄게.”
2_ 결국,
나는 그 바다에 다시 가지 못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 이야기를 끝내 듣지 못했다.
누구도 내 태몽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나를 안심시키면서도,
동시에 미치도록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 장면만 텅 비어 있다는 게
자꾸 마음에 걸렸다.
언젠가부터
반짝이는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빛을 오래 바라보고,
물 위에 남은 흔적을 붙잡고,
사라지기 직전의 이미지를 반복해서 찍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라면,
내가 상상해도 되는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성된 이미지들 속에서
나의 태몽을 상상해본다.
3_ 또 다른 대화
끼룩끼룩
쏴아아아아
스르르르
갈매기가 울고, 파도가 치고, 모래가 쓸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토독- 토도독
큰 물에 작은 물이 하나 둘 흡수되어 간다.
그때 들리는 목소리
“안녕”
고개를 들자 어떤 아이가 서있다.
아이를 내려보았지만, 손목에 있는 반짝임으로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반짝임은 이내 나에게 다가오고,
받아보니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는 커다란 반지였다.
햇빛이 닿을 때마다 물 위처럼 반짝인다.
나는 그걸 어떻게 받아야 할지 잠시 망설인다.
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
그냥 내 손바닥 위에 반지를 올려놓는다.
반지는 내 손에 비해 너무 크지만,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 순간 파도 소리가 조금 멀어진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물 쪽으로 돌아선다.
나는 손을 내려다본다.
반지는 여전히
거기 있다.
4_바다괴물
물에 깊게 빠졌던 적이 있었다.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그리고 얼마나 긴 시간 동안 허우적거렸는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는 감각과 몸이 생각보다 천천히 가라앉았다는 것만 기억에 남았다.
소리는 갑자기 멀어지고,
바닥을 알 수 없는 미지의 곳엔 어떤 괴물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에서 보던 것들이 희미해질 때 쯤, 아래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물속에서 몸이 무거워졌는데 아프지는 않았다 숨을 쉬지 못하겠다는 생각보단 아직 더 내려가고 있다는 감각이 먼저였다. 나중에 어떤 영화에서 미즈코라는 단어를 들었다.
일본에서는 태어나지 못한 아이를 물의 아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 아이들은 울지도 못하고, 떠오르지도 않고, 그 자리에 남아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가 가라앉던 그날의 물을 이야기로 떠올렸다.
그 이후로 내게 바다는 무서운 곳이기 보다는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곳이 되었다.
5_
이 말을 꺼내기 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다.
어디서부터 꺼내야할지 잘 모르겠다.
이제 막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혹시,
우리가 오래 오래 계속 같이 있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함께 늙어가는 상상도
같은 집에 머무는 미래도 그렸다
그저 같은 순간을, 같은 빛을
함께 마주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디선가 각자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라도
함께 보고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으면
그걸로 되는 건 아닐까
아직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냥
이 말이라도 남겨두고 싶었다.
——————– SFO (long version)
서원태 installation with colored sand (a.k.s my debt to piccaso) 16mm film to video(720*480) l b&w video with color sand l silent l 1hr l 2010
색 모래와 함께 비디오 설치 16밀리 흑백필름을 비디오로 변환/무성/1시간/2010는 샌프란시스코 공항 내 공항철도에서 촬영한 16밀리 필름 푸티지를 디지털 비디오로 변환하여 가공한 비디오 작업이다. 하나의 단일 화면을 복제하여 상하좌우 대칭의 구도로 재 배치한 후 이를 플릭커 효과가 될 때까지 복제를 반복하였다.
구상(具象)에서 시작한 속도감 있는 영상은 추상(抽象)의 패턴을 지나 빛의 점멸(點滅)로 귀결 된다. 비디오는 시간 구성상 두 번 반복되는데, 구상의 화면에서 빛의 점멸로, 빛의 점멸에서 다시 구상의 동영상으로 전개되며 좌우 대칭의 시간 구조를 만들어 낸다.
화면 아래의 채색된 모래는 역동적인 흑백의 화면과 대비를 이룬다. 모래 정물(靜物)은 시간 변화에 따른 영화 이미지의 움직임(이미지의 공간 변화)과 대비를 이룬다. 무채색의 동적 움직 임과 채색된 정적 오브제는 영화가 반복 재생되어 누적되는 시간성에 대한 지표(Index)인 동 시에 물성(物性)에 기댄 은유이다. 즉, 채색 모래는 사건으로써의 상영된 영화의 흔적을 의미 한다. 영화는 반복되지만 상영된 영화의 시간은 불가역적이며, 모래는 ‘현재 움직이는’ 스크린 앞에서 ‘과거의 시간’을 소환하여 영화적 시공간의 과거와 현재, 움직이는 이미지로써의 영화의 정중동(靜中動)을 드러낸다.
——————– not still but moving
조혜정 l 16mm film scan (5 min) + 사진콜라주
美軍(미군)기지촌 「혼혈문화」의 고향 「한국속 아메리카」
『64년 스물한살 땝니다. 동두천 생연4리에 있는 브라보홀 여종업원으로 기지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먼 친척오빠에게 11세에 성폭행당한데다 딴 여자와 살림을 차린 아버지가 싫어서 가출을 일삼다 술집주인의 꾐에 빠진거죠. 당시 미7사단이 주둔하던 동두천은 최대의 기지촌이었어요. 나같은 윤락여성이 3천명도 넘었어요. 낮에는 홀에 나가고 밤에는 환각제를 계속 먹으며 단칸방에서 미군손님을 받고…. 동두천을 리틀 시카고라 불렀는데 폭행사건과 마약거래가 끊이지 않았어요. 미군과 한국인군속들은 차떼기로 부대에서 물건을 빼내는 무법천지였습니다. 미군이 훈련을 할 때면 우리는 포주의 인솔아래 담요를 들고 어디든 미군을 따라나섰죠. 야산의 차디찬 바닥에 담요한장을 깔고 황소만한 미군의 몸무게를 감당하면서도 나는 골방에서 결핵으로 피를 토하고 있을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기지촌 생활 32년째인 金모씨(53)의 증언이다. 동두천 전성시대는 71년 미7사단이 철수하면서 막을 내렸다. 그녀도 새생활에 적응해야 했다. 지금 그녀는 송탄에서 혼혈아와 기지촌여성을위한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캠프 스탠리. 의정부시에서 퇴계원쪽으로 십여km 떨어진 미군기지다. 행정구역 고산동 대신 「뺏벌」이라 불린다. 원래 배나무가 많아 뱃벌이라 불렀으나 한번발을 들여 놓으면 뺄 수 없다해서 이렇게 바뀌었다. 인구 3백명이 채 안되는 이 작은 마을에 미군상대 술집이 10여곳이고 아가씨가 70여명이다.
이중 이씨의 삶은 잔잔한 아픔과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본인은 한사코 쉰다섯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70대라는게 주위의 귀띔. 바로 몇년전까지만 해도 밤거리에 나가 미군을 유혹, 자신의 단칸방으로 데려가 몸을팔아 연명했다. 그녀는 이제 밤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짙은 화장에 중국어 일본어 영어가 뒤섞인 말투는 그녀의 지난 자취를 말해준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분단, 미군주둔등 현대사의 갈등이 한 개인에게 정신대와 양공주라는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남겨 놓은 것이다.
朴正熙(박정희)정권은 윤락행위방지법을 무시하고 기지촌 육성정책을 펴기까지 했다. 미군을 상대로 하는 술집에는 면세혜택을 주었으며 관광사업 진작이라는 명목으로 술집주인들의 해외연수도 시켜주었다. 심지어 기지촌의 행정관리들이 윤락여성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당신들은 한국을 지켜주러온 미군을 위안하고 달러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라고 칭송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70년대 들어 닉슨과 카터 미국대통령이 주한미군을 7만명에서 4만명으로 감축하면서 기지촌도 쇠퇴기를 맞게 되었다. 더욱이 8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反美무드는 미군들의 부대밖 외출을 꺼리게 만들어 기지촌에 장기적인 불황을 몰고 왔다.
현재 전국 27개 기지촌의 보건당국에 등록된 미군상대 윤락여성은 8천여명 정도. 그들의 꿈은 한결같이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가는 것. 계약동거 기간을 거쳐 일년에 약 3천쌍 정도가 미군과 국제결혼을 하지만 생활습관의 차이와 의사소통의 어려움, 상대 미군이 가진 심리적 경제적 문제로 인해 70~80%가 이혼하게 된다. 홀로 혼혈아를 키우게 된 처지에 놓인 이들은 클럽에서 허드렛일을 하거나 행상,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히빠리」 노릇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46년 이후 미군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는 7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대다수가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생활전선에 나서야하는 어머니의 관심도 받지 못한채 유해환경속에 방치돼 여성의 경우 다시 윤락녀가 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동아일보 | 1995.02.10 기사 (기획/연재) (金世媛)
김연경 l 2025 l Color l Silent l 4min 48sec l 16mm
사과 연작의 두 번째 작업. 노란(Y) 텅스텐 조명 아래에 놓여있는 빨간(R) 사과 주위로 파란색(B) 직육면체가 둘러 쌓이고, 곧이어 사과가 사라진다. 동일한 패턴이 그린(G) 스크린과 암흑(B)을 배경으로 반복된다. 갖가지 방식으로 구현된 여러 색상들이 동일한 현상과 프린트 과정을 거쳐 하나의 필름 스트립 위에서 서로 동등한 지위를 지닌 채 영사된다.
2025년 스페이스셀에서 제작한 현상 기계와 컬러용으로 개조한 컨택트 프린터를 이용하여 완성되었다.
——————– project BADA
김현수 l Installation l 2025
히빠리「project BADA>는 ‘바다’라는 이미지를 단일한 대상으로 고정하지 않고, 서로 다른 이미지로 분화시켜 공간 전반에 흩어 배치한다. 각각의 이미지는 동일한 명칭 아래 놓이지만, 각기 다른 원본과 성격, 그리고 물질적인 조건으로 구분될 수 있으며 반복과 차이를 통해 관계를 형성한다. ‘BADA’는 바다를 영어로 번역한 단어가 아니라,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사용한 표기이다. 이는 바다를 특정한 풍경이나 대상으로 규정하기보다, 반복과 변형 속에서 계속 다른 상태로 나타나는 이미지의 과정을 열어두기 위한 선택이다.
바다는 종이와 조개껍질 위에 인화되며, 동시에 추상적 이미지의 형태로도 제시된다. 이미지 제작에는 태양광에 의존하는 시아노타입 인화 기법이 사용되며, 이 과정에서 이미지는 서로 다른 시간과 물질 위에 흔적으로 남는다.
1_ 그 사람과의 대화 “반짝반짝 예쁘네.꼭 보석 같아.”
“응, 그러게.
근데 나는 보석은 별로 안 좋아해.
이상하게 물 반짝이는 거 보는 건 또 좋아.
근데 물에 들어가는 건 너무 무서워.
어쩌다 이런 어른이 되었을까?”
“이상하네.
너 태몽이 다이아몬드였잖아.”
“내 태몽? 지금까지 아무도 나한테 그런 얘기 안해줬잖아.”
그 사람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어갔다.
“정확히는…다이아몬드만 있었던 건 아니고.”
그 사람은 손으로 허공을 한 번 그렸다.
“어디였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주변이 반짝였어.
물 같기도 했고.”
“바다였어?”
“글쎄.”
그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깊어 보였어.”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나중에 다시 바다에 오면,
그때 더 생각나면 말해줄게.”
2_ 결국,
나는 그 바다에 다시 가지 못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 이야기를 끝내 듣지 못했다.
누구도 내 태몽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나를 안심시키면서도,
동시에 미치도록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 장면만 텅 비어 있다는 게
자꾸 마음에 걸렸다.
언젠가부터
반짝이는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빛을 오래 바라보고,
물 위에 남은 흔적을 붙잡고,
사라지기 직전의 이미지를 반복해서 찍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라면,
내가 상상해도 되는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성된 이미지들 속에서
나의 태몽을 상상해본다.
3_ 또 다른 대화
끼룩끼룩
쏴아아아아
스르르르
갈매기가 울고, 파도가 치고, 모래가 쓸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토독- 토도독
큰 물에 작은 물이 하나 둘 흡수되어 간다.
그때 들리는 목소리
“안녕”
고개를 들자 어떤 아이가 서있다.
아이를 내려보았지만, 손목에 있는 반짝임으로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반짝임은 이내 나에게 다가오고,
받아보니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는 커다란 반지였다.
햇빛이 닿을 때마다 물 위처럼 반짝인다.
나는 그걸 어떻게 받아야 할지 잠시 망설인다.
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
그냥 내 손바닥 위에 반지를 올려놓는다.
반지는 내 손에 비해 너무 크지만,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 순간 파도 소리가 조금 멀어진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물 쪽으로 돌아선다.
나는 손을 내려다본다.
반지는 여전히
거기 있다.
4_바다괴물
물에 깊게 빠졌던 적이 있었다.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그리고 얼마나 긴 시간 동안 허우적거렸는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는 감각과 몸이 생각보다 천천히 가라앉았다는 것만 기억에 남았다.
소리는 갑자기 멀어지고,
바닥을 알 수 없는 미지의 곳엔 어떤 괴물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에서 보던 것들이 희미해질 때 쯤, 아래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물속에서 몸이 무거워졌는데 아프지는 않았다 숨을 쉬지 못하겠다는 생각보단 아직 더 내려가고 있다는 감각이 먼저였다. 나중에 어떤 영화에서 미즈코라는 단어를 들었다.
일본에서는 태어나지 못한 아이를 물의 아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 아이들은 울지도 못하고, 떠오르지도 않고, 그 자리에 남아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가 가라앉던 그날의 물을 이야기로 떠올렸다.
그 이후로 내게 바다는 무서운 곳이기 보다는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곳이 되었다.
5_
이 말을 꺼내기 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다.
어디서부터 꺼내야할지 잘 모르겠다.
이제 막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혹시,
우리가 오래 오래 계속 같이 있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함께 늙어가는 상상도
같은 집에 머무는 미래도 그렸다
그저 같은 순간을, 같은 빛을
함께 마주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디선가 각자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라도
함께 보고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으면
그걸로 되는 건 아닐까
아직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냥
이 말이라도 남겨두고 싶었다.
——————– SFO (long version)
서원태 installation with colored sand (a.k.s my debt to piccaso) 16mm film to video(720*480) l b&w video with color sand l silent l 1hr l 2010
색 모래와 함께 비디오 설치 16밀리 흑백필름을 비디오로 변환/무성/1시간/2010
구상(具象)에서 시작한 속도감 있는 영상은 추상(抽象)의 패턴을 지나 빛의 점멸(點滅)로 귀결 된다. 비디오는 시간 구성상 두 번 반복되는데, 구상의 화면에서 빛의 점멸로, 빛의 점멸에서 다시 구상의 동영상으로 전개되며 좌우 대칭의 시간 구조를 만들어 낸다.
화면 아래의 채색된 모래는 역동적인 흑백의 화면과 대비를 이룬다. 모래 정물(靜物)은 시간 변화에 따른 영화 이미지의 움직임(이미지의 공간 변화)과 대비를 이룬다. 무채색의 동적 움직 임과 채색된 정적 오브제는 영화가 반복 재생되어 누적되는 시간성에 대한 지표(Index)인 동 시에 물성(物性)에 기댄 은유이다. 즉, 채색 모래는 사건으로써의 상영된 영화의 흔적을 의미 한다. 영화는 반복되지만 상영된 영화의 시간은 불가역적이며, 모래는 ‘현재 움직이는’ 스크린 앞에서 ‘과거의 시간’을 소환하여 영화적 시공간의 과거와 현재, 움직이는 이미지로써의 영화의 정중동(靜中動)을 드러낸다.
——————– not still but moving
조혜정 l 16mm film scan (5 min) + 사진콜라주
美軍(미군)기지촌 「혼혈문화」의 고향 「한국속 아메리카」
『64년 스물한살 땝니다. 동두천 생연4리에 있는 브라보홀 여종업원으로 기지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먼 친척오빠에게 11세에 성폭행당한데다 딴 여자와 살림을 차린 아버지가 싫어서 가출을 일삼다 술집주인의 꾐에 빠진거죠. 당시 미7사단이 주둔하던 동두천은 최대의 기지촌이었어요. 나같은 윤락여성이 3천명도 넘었어요. 낮에는 홀에 나가고 밤에는 환각제를 계속 먹으며 단칸방에서 미군손님을 받고…. 동두천을 리틀 시카고라 불렀는데 폭행사건과 마약거래가 끊이지 않았어요. 미군과 한국인군속들은 차떼기로 부대에서 물건을 빼내는 무법천지였습니다. 미군이 훈련을 할 때면 우리는 포주의 인솔아래 담요를 들고 어디든 미군을 따라나섰죠. 야산의 차디찬 바닥에 담요한장을 깔고 황소만한 미군의 몸무게를 감당하면서도 나는 골방에서 결핵으로 피를 토하고 있을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기지촌 생활 32년째인 金모씨(53)의 증언이다. 동두천 전성시대는 71년 미7사단이 철수하면서 막을 내렸다. 그녀도 새생활에 적응해야 했다. 지금 그녀는 송탄에서 혼혈아와 기지촌여성을위한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캠프 스탠리. 의정부시에서 퇴계원쪽으로 십여km 떨어진 미군기지다. 행정구역 고산동 대신 「뺏벌」이라 불린다. 원래 배나무가 많아 뱃벌이라 불렀으나 한번발을 들여 놓으면 뺄 수 없다해서 이렇게 바뀌었다. 인구 3백명이 채 안되는 이 작은 마을에 미군상대 술집이 10여곳이고 아가씨가 70여명이다.
이중 이씨의 삶은 잔잔한 아픔과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본인은 한사코 쉰다섯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70대라는게 주위의 귀띔. 바로 몇년전까지만 해도 밤거리에 나가 미군을 유혹, 자신의 단칸방으로 데려가 몸을팔아 연명했다. 그녀는 이제 밤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짙은 화장에 중국어 일본어 영어가 뒤섞인 말투는 그녀의 지난 자취를 말해준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분단, 미군주둔등 현대사의 갈등이 한 개인에게 정신대와 양공주라는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남겨 놓은 것이다.
朴正熙(박정희)정권은 윤락행위방지법을 무시하고 기지촌 육성정책을 펴기까지 했다. 미군을 상대로 하는 술집에는 면세혜택을 주었으며 관광사업 진작이라는 명목으로 술집주인들의 해외연수도 시켜주었다. 심지어 기지촌의 행정관리들이 윤락여성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당신들은 한국을 지켜주러온 미군을 위안하고 달러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라고 칭송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70년대 들어 닉슨과 카터 미국대통령이 주한미군을 7만명에서 4만명으로 감축하면서 기지촌도 쇠퇴기를 맞게 되었다. 더욱이 8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反美무드는 미군들의 부대밖 외출을 꺼리게 만들어 기지촌에 장기적인 불황을 몰고 왔다.
현재 전국 27개 기지촌의 보건당국에 등록된 미군상대 윤락여성은 8천여명 정도. 그들의 꿈은 한결같이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가는 것. 계약동거 기간을 거쳐 일년에 약 3천쌍 정도가 미군과 국제결혼을 하지만 생활습관의 차이와 의사소통의 어려움, 상대 미군이 가진 심리적 경제적 문제로 인해 70~80%가 이혼하게 된다. 홀로 혼혈아를 키우게 된 처지에 놓인 이들은 클럽에서 허드렛일을 하거나 행상, 길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히빠리」 노릇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46년 이후 미군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는 7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대다수가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생활전선에 나서야하는 어머니의 관심도 받지 못한채 유해환경속에 방치돼 여성의 경우 다시 윤락녀가 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동아일보 | 1995.02.10 기사 (기획/연재) (金世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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