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하지마 - 박준식

반말하지마 (WATCH YOUR TONE)
박준식 개인전
PARK JUN SIK solo exhibit
2026.8.28~9.12
주최 : 공간투 x 웍밴드 공
 
외강내유

글 | 이은정

상처를 예술로 전환하는 존재의 방식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쩌면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되돌아가게 되는 가장 오래되고 근원적인 질문일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하나의 고정된 성격이나 몇 개의 단어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의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정의되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는 지나온 경험과 기억, 타인과 맺어온 관계, 그리고 수많은 순간에 내린 선택의 궤적 속에서 서서히 드러난다. 결국 한 사람의 정체성이란 완성된 결과라기보다 삶의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수정되는 하나의 흔적에 가깝다.

특히 예술가에게 삶은 창작과 분리된 영역이 아니다. 새로운 자극에 마음을 열고,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며, 일상의 사소한 사건에서도 의미와 형식을 발견하는 예술가에게 경험은 곧 작업의 재료가 된다. 기쁨과 슬픔, 관계의 온기와 갈등, 우연한 만남과 피하고 싶었던 기억까지도 결국 창작의 감각 안으로 스며든다. 예술은 삶에서 아름다운 것만을 골라내는 일이 아니라,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경험조차 새로운 질서와 의미 속에 다시 놓아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성향을 설명하는 여러 방식 가운데 ‘외유내강’과 ‘외강내유’라는 표현은 이러한 내면의 복합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와 실제 내면의 상태는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 부드러워 보이는 사람이 단단한 중심을 지니기도 하고, 강하고 거친 태도 뒤에 취약한 내면을 감추고 있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더 우월한가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본질적으로 이러한 이중성과 복합성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관계가 이해와 존중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불안과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타인을 공격하거나, 거친 언행과 무례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태도는 타인에게 고스란히 상처로 남는다.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개인은 때로 설명할 수도, 설득할 수도, 쉽게 벗어날 수도 없는 무력감을 경험한다. 그렇게 축적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말하지 못한 분노, 억울함, 불쾌함, 그리고 이해받지 못했다는 감각은 마음 어딘가에 침전되어 오래 남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상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박준식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바로 이러한 피할 수 없었던 삶의 얼룩과 상처를 예술의 언어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자신을 괴롭혔던 부정적인 경험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고발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캔버스라는 또 다른 세계로 옮겨놓고, 그 안에서 전혀 다른 질서로 변형한다. 현실에서 자신을 억눌렀던 감정은 화면 위에서 더 이상 일방적인 피해의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붓질이 되고, 선이 되고, 색이 되고, 마침내 하나의 회화적 형식으로 다시 태어난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창작의 에너지로, 부정적인 사건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꾸는 것. 그것은 단순한 긍정이나 자기 위안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이 부여한 의미의 질서를 뒤집고, 그 안에 숨어 있던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는 적극적인 태도이다.

작가의 회화는 상처를 지우는 방식으로 치유를 말하지 않는다. 상처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거나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상처를 상처인 채로 화면 위에 불러낸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다른 구조 속에 배치하며, 결국 자신의 것으로 다시 소유한다. 여기에서 예술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다시 점유하는 행위가 된다. 한때 자신을 압도했던 경험을 캔버스 위에 가져오는 순간, 작가는 더 이상 그 경험에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변형하는 사람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작업 과정은 하나의 격렬한 의식(ritual)에 가깝다. 길게 펼쳐진 캔버스 위를 오가는 붓질은 단순한 회화적 행위 이상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반복되고 중첩되는 붓의 궤적은 언어로 미처 표현되지 못했던 감정의 움직임을 가시화한다. 화면은 더 이상 조용히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작가의 몸과 감정이 직접 부딪히는 장소가 된다. 붓질은 때로 공격적이고 거칠며, 때로는 망설이듯 느려진다. 그 차이는 화면 위에 고스란히 기록된다.

특히 흰색과 검은색의 충돌은 이러한 내적 움직임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흰 물감 위를 가로지르는 검은 선은 처음에는 단순하고 명확한 흔적처럼 보이지만, 서로 충돌하고 겹쳐지는 과정에서 회색의 풍경으로 확장된다. 명확했던 경계는 흐려지고, 흐려진 형상은 다시 독립적인 검은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흑과 백, 강함과 부드러움, 침묵과 발화, 질서와 혼돈이 서로 밀어내고 끌어당기면서 화면 안에 긴장을 만든다.

그러나 이 긴장은 어느 한쪽의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대립하는 것들이 공존하면서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낸다. 검은 선은 흰 화면을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고, 흰색 역시 검은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리지 못한다. 그 사이에서 생성되는 회색의 층위는 양극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감정의 상태를 상징한다. 인간의 내면 역시 그러하다. 우리는 분노하면서 동시에 슬퍼하고, 상처받으면서도 다시 관계를 원하며, 강해지려 하면서도 때로는 무너진다. 삶은 흑과 백으로 나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이에서 수많은 색과 감정이 생겨난다.

박준식 작가의 회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이 복합적인 인간의 상태를 특정한 서사로 설명하기보다 회화의 물성 자체를 통해 경험하게 한다는 데 있다. 화면 위의 선과 색, 붓질과 흔적은 어떤 사건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들은 사건 이후에 남겨진 감정의 잔여물처럼 존재한다. 관객은 그 흔적을 바라보면서 작가의 경험을 그대로 알 수는 없지만, 그 안에 축적된 긴장과 해소의 움직임을 감각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결국 이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있었는가’보다 ‘그 경험이 어떻게 다른 존재 방식으로 변했는가’에 있다. 현실에서 상처였던 것이 회화에서는 형식이 되고, 억압이었던 것이 움직임이 되며, 분노는 에너지로 전환된다. 삶이 남긴 얼룩은 지워지는 대신 화면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존재를 다시 확인한다. 그런 점에서 박준식 작가의 이번 전시는 삶의 비극을 아름답게 포장한 기록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부정성에 정면으로 응답하여 그것을 창작의 언어로 전환해낸 하나의 실천이다.

이번 전시는 한 사람이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고, 그것을 통과하며, 마침내 자신의 회화적 언어로 되돌려놓는 과정의 기록이다. 강렬한 붓질과 고요한 화면 사이에서 파편화된 감정은 하나의 형상으로 응축되고, 삶의 부정성은 창작의 에너지로 역전된다. 박준식 작가의 회화 앞에서 우리는 결국 그의 삶만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각자가 지나온 경험과 기억, 쉽게 말하지 못했던 감정과 아직도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흔적을 함께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쩌면 그 답은 이미 완성된 문장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경험했고, 무엇에 상처받았으며, 그것을 어떻게 견디고 무엇으로 바꾸어왔는가. 바로 그 과정의 흔적들이 지금의 나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박준식 작가의 이번 전시는 그 흔적을 회화의 언어로 드러내며, 상처 이후에도 인간은 계속해서 자신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증명한다.
박준식_어느 날 1_acrylic on canvas_240x150cm_2026
박준식 [반말하지마]

우리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동안 서로의 경계를 지키기도 하고, 때로는 그 경계를 넘나들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갈등과 다툼은 끊임없이 발생하며, 때로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상황들을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마주해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를 회피하거나 방관하기보다 나름의 방식으로 단호하게 맞서왔다. 서로 다른 생각과 태도, 가치관이 충돌하는 순간들은 개인과 개인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세대와 세대 사이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세대 간의 간극과 대립이 점차 첨예해지고 있는 지금, 이러한 갈등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번 작업은 그동안 내가 마주하고 맞서왔던 갈등의 순간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내가 취해온 태도와 감정을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해보려는 시도이다. 동시에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충돌하는 관계가 결국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무엇인지 확인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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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live our lives forming relationships with others, sometimes respecting each other’s boundaries and at other times crossing them. In this process, conflicts and disputes constantly arise, sometimes taking on extreme and even violent forms.

I have encountered these situations repeatedly in my everyday life. Rather than avoiding them or remaining a passive bystander, I have chosen to confront them firmly in my own way. Moments when different thoughts, attitudes, and values collide do not remain simply conflicts between individuals; they can also develop into tensions between generations. At a time when generational divides and confrontations are becoming increasingly pronounced, such conflicts are becoming ever more visible throughout our society.

This work is an attempt to revisit the moments of conflict that I have encountered and confronted, and to reflect on the attitudes and emotions I have carried through them. At the same time, I seek to explore how far relationships marked by the constant crossing of boundaries and repeated collisions can go, and what we may ultimately come to face at the end of them.
박준식_어느 날 1_acrylic on canvas_240x150cm_2026
박준식_어느 날 2_acrylic on canvas_240x150cm_2026
박준식_어느 날 3_acrylic on canvas_205x145cm_2026
박준식_어느 날 4_acrylic on canvas_145x120cm_2026
박준식_드로잉 2026 연작_mixed media_2026
박준식_어느 날 5_acrylic on canvas_230x150cm_2026
박준식_어느 날 6_acrylic on canvas_220x145cm_2026
박준식_어느 날 7_acrylic on canvas_220x145cm_2026
박준식_어느 날 8_acrylic on canvas_200x150cm_2026
개인전

2026 「반말하지마 WATCH YOUR TONE」 공간투.서울
2026 「직진 Go Straight」 성북문화재단 스튜디오 D. 서울
2025 「Gold Rush」 스페이스 투고. 서울
2025 「Early Say Good Bye」 오 재미동갤러리. 서울
2023 「탕아의 계절」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영천
2022 「100 capsule」 space xx. 서울
2022 「개구리를 밟고 지나갔던 적에」 성북문화재단 예술순환로 예술램프. 서울
2021 「Humanist」 아트스페이스 그로브. 서울
2021 「(각)(각)의 (완결)」 오 재미동갤러리. 서울
2019 「위험한 도약」 인디아트홀 공. 서울

작가노트

나는 예나 지금이나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작가로서 작업에 임하고 있다.

물론 때와 상황에 따라 여러 그럴듯한 미사여구나 대의명분이 필요하거나 떠오르는 것들이 추가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무척이나 심플하다. 그리고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나는 오직 나를 위한 나만의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 목표이며, 이는 나의 시작이자 마침표가 될 것이다.

그것에 자신 이외에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개입되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나의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에서 마주하고 있는 삶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들과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작가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 마주하고 있는 지금의 실존하는 현실 그 자체이다.

물론 그렇다고 사건 파일이나 다큐멘터리처럼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을 악착같이 담아내려고, 강박적일 만큼 집착하며 사진처럼 그리려고 한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단지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고 또 그리고자 하는 방식대로 그리기 위해 살아가는 작가일 뿐이지 기자, 사회운동가, 정치인, 심판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각자 여러 의견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위의 생각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작가 자신에 한해서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을 전한 것일 뿐이니 부디 오해는 없길 바란다.

그러한 맥락에서 자신은 늘 자유로운 관찰과 탐구, 사유와 탐닉의 과정을 통하여 여러 경계선들을 넘나들며 성역 없는 사고와 표현, 활동들을 함에 있어서 교육적인 의도를 담아내거나 계몽하려 들거나 교조적인 태도를 담아낼 생각이 일체 없다.

단지 어디까지나 한 사람의 작가이자 인간으로서 자신이 개인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독립적인 삶과 그에 따른 시선에서 비롯된 다양한 감각적·지각적 논리와 형식들을 이미지로서 시각화하고 구조화하며 구현하고 유희하는 것에 깊이 치중되어 있음을 밝힌다.

글을 마무리하며 다시 한번 분명히 전하지만, 나는 언제나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그림을 그려왔고 또 지금도 계속 그리고 있으며, 이는 지금까지도 또 앞으로도 절대 결코 변치 않을 것임을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꼭 전하고 싶다. / 박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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