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 - 임동현

공전
임동현 개인전
2021.8.3-14
제자리걸음, 존재가치

이번 개인전은 ‘공’과 ‘공전’이란 단어의 여러 가지 의미와 관련된 작품에 대한 것이다. 작품과 작업 과정을 단어 ‘공’이 관통한다. 공은 복합적 의미가 있다. 그래서 내 작품과 감정, 생각을 둘러싼 여러 가지 측면을 잘 설명한다.

1. 이루지 못한 채 공허한
지난 5월 나는 고 장원봉 선배의 기일을 맞아 2주간 선배의 묘소에 놓을 긴 의자를 만들었다. 현장의 요청에 언제든 달려갔던 사회적 경제의 이론가인 그의 생애를 보며 현장 활동가들이 그의 묘소를 마주 보며 상상의 대화를 하기 위한 틀을 만들어 전달하고자 했다. 유족의 반대로 나의 의자는 불용품이 되고 말았다. 이루고 달성하지 못해 헛도는 나의 작품과 작업은 공(空:빌공)이다. 2016년 나는 몇 개의 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점심 식사 장면을 회화로 기록하고 이를 문제를 제기하려고 했다. 변변한 식당도 식탁도 없이 신문지나 맨바닥에서 밥 먹는 장면인 작품 <점심바닥>의 비참한 근로환경은 5년이 지난 지금에도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피해사례에서 보듯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나의 작품은 깃털만큼이라도 무엇인가를 바꾸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 공(空)허한 울림이었다.

2. 그림 사회(公), 공작(工作), 노동 집약으로 버려진 물건의 새로운 가치
나의 공은 公과 공(工) 대한 것이다. 작품이 주제였던 수평적 인간관계를 담고자 했던 公공(사회적인 것, 공평)에 대한 것이기도 하며, 내 작품을 표현하는 노동집약성을 보이기 위한 공(工)이기도 하다. 공은 일정한 기준과 필요, 기분을 충족하지 못해 버려진 물건(불용품)에 나를 투사하여 버려진 것의 결합과 공작(工作)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위해 시도했던 나의 공작물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3. 공전을 꿈꾸며
이번 전시에서 나는 프로타주 과정이 동시에 판화 찍기가 되고 앞면과 뒷면이 교차하는 공전[空前]의 산물(내 기준에서)을 보인다. 작품 설치 방법으로 공중(空中)에 작품을 전시하는 공전(空展)을 동시에 진행한다. 이런 설치는 앞뒷면을 다름과 동시성을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다.

4. 존재가치
실패는 아프다. 나의 작품은 공식적인 기준에서 평가되지 않고 침묵과 무관심, 외면의 대상물이 되어 비닐 포장지에 싸여 있다. 이번 전시는 작품 중에서 사회적 목적이든, 작품에 대한 평가이든 작품이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 것의 전시다. 내 작품의 존재 의의는 한 가지 색으로 규정된 수많은 익명의 존재들의 몫을 찾고 배제와 떠밀림으로 제거당한 꿈의 진전을 매개하는 것이었다. 이 목적에서 나의 작품과 활동은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울림이었는가라는 기준에서 나의 작업은 공전(헛돎)하고 있다.

그럼에도 모든 실패 속에서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나는 어떤 존재의의를 갖는가?

반복되는 헛돎과 제자리걸음, 그 자체가 나의 존재 아닐까? 힘찬 운행을 위한 공회전이라 포장하기보다 그저 제자리를 잊지 않고 걷는다는 것이 지금 내 수준에서 입증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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